[오늘과 내일/박영균]‘세금 폭탄’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 입력 2006년 4월 24일 03시 01분


빈부 격차가 우리보다 심한 미국에서도 과거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소용돌이 속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경제정책에 관해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반대를 무릅쓰고 부유세를 도입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그랬듯이 미국도 대공황 이후 빈부 차가 심해졌다. 빈곤 타파용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부유세였다. 그러나 이 세금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루스벨트는 부호 밴더빌트의 초대로 그의 요트에 가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부자들이 호화 요트를 사서 탈세를 하고 재산을 카리브 해의 면세국으로 이미 옮겨 놓았다는 것을.

미국에서 요트는 부의 상징이다. 1990년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재산세 누진과세를 협상 중이던 여야의 예산 담당자들은 타협이 어려워지자 꾀를 냈다.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빈곤층을 달래기 위해 상징적으로 요트 비행기 모피 보석 등에 사치세를 매기기로 합의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특별소비세에 해당하는 이 세금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는 공청회도 없이 졸속으로 처리되었다. 요트 제조업자들조차 법안이 통과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다음 해인 1991년부터 10만 달러 이상 고급 요트에 대해 10%의 세금이 부과되었다.

사치세의 효과는 곧 나타났다. 시행 6개월 만에 고급 요트의 판매는 70%나 줄었고 소형 보트 판매도 33% 감소했다. 대신 부자들은 사치세가 없는 다른 나라로 가서 다른 사치품을 샀다. 부자들은 요트를 사지 않으니 세금을 더 낼 필요도 없었다.

사치세 부과로 타격을 입은 쪽은 부자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이었다. 한 해 동안 미국 요트 제조업체가 3분의 1 이상 문을 닫았고 약 2만5000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배를 만드는 데 숙련된 노동자였다.

결국 요트는 부자들의 필수품이 아니라 미국 요트산업 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부자들은 세금이 늘면 요트를 소비하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가난한 노동자들은 요트 생산이 중단되어 일자리를 잃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세금 중과의 대상이 된 중대형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자 중산층의 필수품이다. 초대형 아파트는 요트와 비슷한 점도 있다. 초대형 고급 아파트에 ‘벌금성’ 세금을 중과하면 집 짓는 숙련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고통을 받게 된다. 그리고 고급 아파트를 사려던 사람들은 세금을 덜 내도 되는 외국으로 가서 고급 주택을 구입할 것이다. 이미 미국 캐나다 중국으로 가서 집을 사는 사람이 늘고 있지 않은가.

주택거래신고제 종합부동산세에 이어 양도세 재산세 등의 중과 조치가 시작되고 기반시설부담금 개발이익환수제 등이 도입되면 주택건설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주택건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따져 보았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상위 20%에 세금 인상을 해도 나머지 80%는 손해 볼 것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밀려 공청회는 생각조차 못 한 게 아닌가.

미국에서 100만 달러짜리 요트를 만들려면 1만2000시간의 노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8명의 1년치 일자리에 해당한다. 그만큼 임금이 지급되고 부의 재분배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주택 건설도 마찬가지다. 고급 주택에 중과를 해서 늘어나는 세금과 건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고 소득세도 늘어나는 부의 재분배 효과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부의 조세 개혁은 일방통행식이다. 세금을 새로 만들기에 앞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조세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곽태원 서강대 교수가 토론이 되지 않는다면서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그는 부동산 관련 세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정부는 조세 개혁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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