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장관도 잘 알겠지만, 지금은 붙들어 맬 수 없는 게 환율이다.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세계에 퍼져 있고 우리의 조정 여지는 적다. 환율 전망을 위해 작년 미국 재정 적자를 키운 허리케인이 또 올지, 미국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어떤지도 챙겨 봐야 하는 세상이다.
주초 급락했던 환율은 중앙은행의 때맞춘 개입 덕에 이틀간 오르기도 했지만 이런 개입을 늘 기대할 수도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정부에 환율을 안정시켜 달라고 건의하기로 했다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달러는 근본적으로 약세 기조다. 미국은 2004년 6월부터 지난달까지 15차례나 금리를 올려 ‘강한 달러’를 억지로 뒷받침했지만 앞으로 금리를 더 올린다 해도 한두 차례뿐이다. 아니면 당장 다음 달 FOMC에서 금리 동결이 발표될 수도 있다. 원-달러 환율 하락이 예고돼 있는 셈이다.
미국의 재정 적자, 경상 적자 등 쌍둥이 적자가 더 커져 달러에 대한 동아시아 통화의 환율 하락 압력이 더 거세질 게 뻔하다. 강대국들이 달러의 평가절하를 용인한 1985년 ‘플라자 합의’처럼 ‘제2의 플라자 합의’에서 대폭적인 달러 약세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이게 시한폭탄이다. 앞으로 툭하면 ‘플라자’ 소리가 나와 환율을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어떤 모양이든 빨리 합의가 되면 불확실성이라도 줄어들 텐데 중국이 다른 나라의 압력을 쉽사리 받아줄 리 없으니 혼란이 길어질 것 같다.
수출해 놓고 앉아서 손해를 보는 중소기업들도 환율 하락세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환율 하락이 멈추기를 기다리기보다 그 충격을 줄이는 방안을 찾는 게 더 현명하다.
산업연구원 조사 결과 423개 수출중소기업의 ‘수출 불가능’ 환율은 달러당 928원이었다. 960원대에서도 ‘손익분기점에 육박했다’는 응답이 전체의 절반이었고, ‘출혈 수출’ 응답도 4분의 1이나 됐다. 대기업들의 영업이익도 올해 들어 30%가량 감소했으니 중소기업들은 더 심할 것이다. 과거 원화 강세 때도 수출이 줄지 않았을 만큼 가격 경쟁력 외에 품질 경쟁력까지 갖춘 중소기업이 늘어난다는 분석 결과가 위안이 될 뿐이다.
문제는 대비 태세다. 연간 1000만 달러 이하를 수출하는 중소기업 가운데 환 리스크(위험) 관리를 하는 업체가 26%에 불과하다는 무역연구소 조사 결과를 보면 상황이 심각하다. 은행에만 가도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줄이는 방법을 들을 수 있다. 산자부 장관은 외환시장 개입보다는 이런 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 게 옳다.
수출채산성이 나쁜 중소기업들은 환율 충격파를 못 이겨 정리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 기업들은 위안화 평가절상의 위기 속에서도 “미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과 경쟁하겠다”고 벼른다. 아예 한국을 제치고 이탈리아 등의 고급 제품과 한판 붙겠다는 중국 기업도 많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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