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은령]오래된 미래를 걷다

  • 입력 2006년 4월 29일 03시 05분


600년 도읍지 서울에 사는 이점은 가벼운 산책으로도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매주 일요일 오후 창경궁에 들르면 조선 영조의 오순(五旬) 생일잔치 재현 행사를 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동원된 무용수와 궁중악사는 1000명이 넘었다. 후세의 사가들이 손자인 정조의 치세까지 합해 ‘조선의 르네상스’로 일컫는 영·정조기. 임금부터 뭇 백성에 이르기까지 ‘자부심’이 은연중 ‘시대정신’이 되었던 때다.

봄이 온 후 청계천 일대는 밤 깊도록 산책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늦은 시간 물가에서 정담을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 술에 취해 친구들과 종각과 청계천을 배회한 뒤 그를 글로 남긴 연암 박지원의 모습이 겹쳐진다. 마침내 새벽녘 청계천에서도 달구경 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인 수표교에 둘러앉은 연암 일행. 슬슬 술이 깨는 모양이었던지 연암은 멀리서 들리는 닭 우는 소리가 “임금께 간언하는 강직한 선비 목소리 같다”고 했다.

300년 전의 과거가 현재와 조응하며 되살아나는 것이 물리적 공간에서만은 아니다.

정부와 국민이 독도를 두고 일본과 날을 세우던 와중에 중국의 일부 누리꾼은 창바이 산을 넣어 새로 ‘중국의 오악(五嶽)’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인들에게 창바이 산인 백두산이 새삼스레 중국의 5대 명산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제 중국의 영토가 크게 넓어졌기 때문”이었다. ‘친디아’의 오만한 자부심이 드러나는 인식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인들의 자부심도 결코 중국이나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엄연한 중국 영토 안으로 관광을 하러 가서도 “이 땅은 고구려 땅이니 우리 땅”이라고 말하는 것이 국민 정서다.

18세기의 선비들도 그랬다. 연암보다 25세 연하로 그와는 다른 지점에서 천재였던 다산 정약용은 “만일 서쪽으로 요동을 얻고 동쪽으로 여진을 평정하며 북쪽으로 흑룡강의 근원까지 올라가고 오른쪽으로 몽고와 대치한다면 충분히 큰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니 이 또한 하나의 통쾌한 일이라 하겠다”(요동론·遼東論)고 했다. 물리적 팽창론은 자부심이라는 시대정신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사상적 조류였다.

‘르네상스’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18세기에 연암과 다산이 있었다면 21세기의 한국인 천재들은 더 집단적으로, 스케일도 크게 등장한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장례식과 가수 비의 공연이 같은 날 세계의 문화 수도인 뉴욕의 핫이슈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마이너리티인 혼혈인 하인스 워드가 슈퍼볼의 MVP가 되고, 한국인 발레리나 김주원이 발레 종주국 경쟁자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 여자무용수로 뽑혔다.

그러나 시간 산책은 질문을 낳는다. 18세기 이후 조선은 어떻게 되었던가. 자부심으로 충만했던 역사는 왜 단절되고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의 시대를 거쳐야 했을까. ‘백과사전의 시대’를 연 동시대 서양 천재 디드로와 볼테르에게 무엇이 미치지 않아 조선의 르네상스는 지속되지 못한 것인가.

6월, 다시 월드컵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꼭짓점 댄스가 펼쳐질 광화문. 시간의 지층을 밟는 산책은 번번이 열광보다는 숙고로 끝난다.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말했다. “역사에서의 원인은 추정되는 것이 아니라 탐구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정은령 문화부 차장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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