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우철]우울한 노동절, 구보 氏의 하루

  • 입력 2006년 5월 1일 03시 03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귓전을 때리는 확성기의 쇳소리에 구보 씨는 아침 단잠을 괴롭게 깼다. 며칠 전부터 계속되는 ‘전국철거민연합’의 아파트단지 앞 시위다. 요즘 ‘민주 성(性)노동자연대’와 공동 투쟁에 나선다더니 시위 양상이 꽤 과격해졌다.

‘공부 및 교육 노동자’ 구보 씨, 심야 노동으로 부족한 수면이 오롯이 신경질로 쌓인다. 그 고성방가야말로 구보 씨의 전공 용어로 ‘기본권의 보호범위를 일탈한’ 행위일 따름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명령 위에 법률, 법률 위에 헌법, 헌법 위에 ‘떼 법’ 있다는 게 한국판 법단계설의 가르침 아닌가.

집을 나서는 구보 씨, 마음 한구석에 울컥하는 억하심정이 든다. 1980년대의 젊은 그들이 청와대로, 국회로, 하다못해 시민단체로 들어간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건만. 구보 씨에게서 벼룩의 간보다 훨씬 큰 세금을 꼬박꼬박 떼어 내 가는 저 정부, 아니 ‘정책 노동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넘쳐 나는 위원회, 위원회, 위원회들. 위원, 위원, 위원들. 벼룩의 간을 좀 더 떼어 내 아침의 평화가 보장될 수 있다면 구보 씨로서는 세금 인상을 꼭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그 세금은 ‘철거민’보다 ‘철거민대책위원회’로 빨려갈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선 캠퍼스. 새봄의 대학은 새 생명의 숨길을 파릇파릇 토해 낸다. 그러나 그건 머지않아 절망의 한숨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독일의 신학자 하르나크는 대학을 일컬어 ‘거대한 공장’이라고 불렀다지. 구보 씨는 일감이나 안 끊기고 돌아가는 공장이면 그나마 다행이려니 싶었다.

1.16명이라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지난 6년간 초등학생 해외 유학 30배 증가. 곧 시장 개방까지 닥쳤으니, 교육보다 더한 사양산업이 어디 있겠는가. 지성의 전당이란 이름도 이젠 옛말이다. 연례행사가 된 ‘개나리 투쟁’에 캠퍼스는 떼 법의 경연장이 돼 버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 아니 ‘정치 노동자들’조차 등록금 문제의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지 않는가. 구보 씨가 보기엔 못할 것도 없지 싶었다. 참여정부 들어서 최대 호황 산업으로 각광받는 분야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될 일이다. 넘쳐 나는 온갖 위원회와 위원들, 연봉 6000만 원의 시의원 구의원만 줄이면 상당 부분 해결될 문제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에게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가 더 급한가, 해양 주권을 지켜 줄 군함 한 척이 더 급한가. 기초자치단체까지 정당공천으로 돈 선거를 하면서, 연봉 6000만 원의 의원직을 나눠 주는 일이 더 급한가. 사람 하나 잘 길러 이만큼 성장한 나라에서, 해마다 등록금 문제로 몸살 앓는 대학과 대학생들을 살려 내는 일이 더 급한가.

국회에서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국회의원들, 아니 ‘입법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창이다. 그리 이상한 일도 못된다. 대통령, 아니 ‘행정수반 노동자’도 못해 먹겠다며 파업 찬반투표를 내건 전례가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국제경쟁과 담 쌓고도 호황을 누리는 ‘정치 산업’이기로서니, 국민에게 기본 품질의 서비스는 제공해야 할 것 아닌가.

서울 강남 부동산을 잡겠다는 부동산 정책이 판교철거민연대를 낳았고, 성매매를 근절하겠다는 여성 정책이 성노동자연대를 낳았다. 구보 씨가 바라는 것이 그리 큰 꿈은 아닐 터이다. 부동산 보유세도 걷고 집창촌 재개발도 했으면 소시민의 아침잠은 지켜 줘야 할 것 아닌가.

1%를 뽑으려 하지 말고, 10%를 뽑아서 1%로 가르치란다. 언필칭 ‘공부 및 교육 노동’의 대중소비시대다. 국가가 나서서 대학을, 대학생을 시장의 정글로 떼미는 판국이라면, 최소한 진흙탕을 밟을 장화 정도는 신겨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언감생심 ‘스승’ 운운하는 봉건윤리는 바라지도 않는다. 노동운동가들에게 전수받은 투쟁 기법인지 뭔지, 투사 예비군들에게 ‘아저씨 아줌마’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겠다.

온 세계가 기념하는 메이데이, 노동자의 국제적 명절이다. 하지만 언제부턴지 우리들에게 노동이란 말, 민주란 말은 그 숭고한 떨림을 멈춰 버린 것 같다. 우울한 마음으로 귀가한 구보 씨. 네 살배기 딸아이, 아니 ‘재롱 노동자’의 함박웃음만이 값을 지키고 있다.

신우철 중앙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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