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한영]한미FTA 논의할 것과 말아야 할 것

  • 입력 2006년 5월 1일 03시 03분


최근 결정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공식 명칭인 ‘코러스(KORUS) FTA’는 상징적으로나 실용적으로 인상적이다. 두 나라 이름을 조합한 코러스가 조화(chorus)라는 뜻도 경쟁적인 협상보다는 우호적인 협력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한미 FTA 협상에 즈음한 국내 현실을 보면 이름만큼 부드러울지 공연한 걱정이 앞선다. 이미 불협화음이 확인된 스크린쿼터나 농업 분야를 제외하면, 사안의 무게에 비해서 한미 FTA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 차분하기 때문이다. 물론 적극적인 반대여론이 없다는 신호일 수 있지만 반대여론이 잠정적 침묵의 형태로 가장(假裝)된 것일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한미 FTA의 지휘자는 더 늦기 전에 화음이든 불협화음이든 구성원의 연주를 독려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통상협상 문제 제기부터 협상전략 수립까지 민간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이 주된 역할을 하는 상향식이다. 반면 통상협상에 대한 우리의 의사 결정 시스템은 하향식에 가까워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정부의 탓만은 아니다. 만일 한미 FTA와 관련한 의사 결정 방식이 하향식으로 비친다면, 이는 상향식 의사 결정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국내 이해당사자들의 현안에 대한 이해 부족이 원인일 수 있다.

일반적인 통상협상에서도 그렇듯이 모든 변수를 다 고려하기에는 한미 FTA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매우 짧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하듯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을 늦추면 한미 FTA는 코러스가 아닌 카오스(chaos·혼돈)일 수 있다.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은 한미 FTA의 내용과 득실에 대한 공론의 기회를 충분히 갖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내 이해당사자들은 스스로의 견해를 좀 더 솔직하게 표출할 수 있을 것이며 상향식 의사 결정 시스템도 자연스레 작동하게 될 것이다. 협상 초기에 국내의 불협화음을 애써 외면하면 나중에는 개의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들 수 있다.

그렇다고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논쟁을 거듭해야 할 이유는 없다. 협상력의 분산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미 FTA의 정량적 파급 효과 추정과 같은 작업은 분명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협정 추진 선언 이전에 끝냈어야 할 부분이다.

한미 FTA 협상이 이미 출범한 상황에서 중요한 과제는 우리 경제 주체들이 국익에 부합하는 시장 구도 및 규제 체계를 모색하는 것이다. 특히 내수 중심의 성장과 전통적 거래 방식에 익숙한 서비스 산업에서는 한미 FTA를 계기로 거대 미국시장 진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경쟁의 차원’을 달리할 각오를 해야 한다. 한미 FTA의 결과로 현실 및 가상공간의 상업적 국경이 사라지면 국내 기업은 오프라인에 이어 온라인상에서도 서비스 경쟁력 1위인 미국 기업의 거센 도전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온라인 국제거래에 대한 규제 방향 및 협상 전략을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못하면 굳이 ‘규제 주권’의 문제를 논하지 않더라도 시장의 불확실성과 혼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다. 꿰고자 하는 자가 한미 FTA를 보배라고 확신한다면 이제 할 일은 좋은 구슬을 찾는 것이다. 국내 경제 주체들의 가감 없는 의견 표출과 협조보다 더 좋은 구슬은 없다. 스스로 구슬을 토해 낼 수 있는 의견 수렴 시스템이 잘 작동해 준다면 KORUS를 위한 첫 번째 고비는 넘은 것으로 보아도 좋다.

이한영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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