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청 공무원들은 요즘 피가 마를 것 같습니다. 3월에 부임한 이현재 청장의 ‘혁신 의욕’이 대단하거든요.
최근 이 청장이 새로 도입한 제도 중에 ‘최고경영자(CEO) 미션제’가 있습니다. 청장이 간부들에게 정책과제를 부여하고 달성도를 평가하는 것이죠. 이미 많은 민간기업에서 하고 있고 정보통신부도 도입한 바 있다고 합니다.
이 제도의 특징은 정해진 과제를 못 해내면 해당 간부에게 인사와 연봉 상 불이익을 준다는 점입니다. ‘보신(保身)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받던 공무원들도 잠이 확 깨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과제의 내용입니다. 중기청 간부들의 ‘올해의 미션’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창업벤처국장: 벤처기업을 1만2500개까지 확대.
기술지원국장: 혁신형 중소기업을 2008년까지 3만 개 육성.
소상공인지원단장: 자영업자 대상 컨설팅 수행 건수를 3000건 달성.
중소기업정책국장: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우수사례를 40건으로 확대.
유난히 숫자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의 질(質)이 걱정되는 것이죠. 중기청은 “객관적 평가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 “부작용도 충분히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작용을 막을 방안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군요.
벤처기업이나 혁신형 중소기업의 수에는 진작부터 ‘거품’ 논란이 있었습니다. 1만 개니, 3만 개니 만들어봤자 ‘진짜’인지 의심된다는 것이죠. 자영업자 컨설팅도 그동안 제한된 인력 때문에 컨설팅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인사고과에 반영한다고 해 보세요. 공무원들이 숫자 채우기에만 급급한 채 한 해를 보내게 되지 않을까요. 혁신은커녕 전형적인 전시행정이지요. 이런 사례는 많습니다. 정부가 귀가 따갑게 홍보했던 ‘노인 일자리 OO만 개 창출’ 구호만 해도 그래요. 이렇게 생긴 일자리는 대부분 생계에 도움이 안 되는 저임금 허드렛일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이 혁신하겠다는 의욕은 좋습니다. 다만 전시행정이라는 말은 듣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것이 이 청장의 올해 ‘진짜 미션’일 겁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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