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예측과 낭비

  • 입력 2006년 5월 3일 03시 00분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하는 잠언집의 한 마디가 있다. 속되게 해석해, 가령 오늘의 금리나 주가를 어제 ‘예측’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카트리나 재해, 9·11테러 같은 재앙을 예측할 수 있다면 보험 증권업자는 대박을 터뜨릴 것이다. 세상에 돈벌이처럼 쉬운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고, 그 결과가 돈과 직결되기 때문에 ‘예측 마켓’이라는 것도 생겨나고 있다.

▷예측(prediction)은 예언(prophecy)과는 달리 과학적 데이터와 분석 틀을 가져야 한다. 예언은 직관과 느낌으로 내놓는 한 마디이므로 틀려도 그만이다. 그러나 예측은 결과가 빗나갈 경우 책임이 따른다. 일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도 자주 빗나가거나, 중대한 착각을 범하면 그만두고 떠난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의 예측 실패로 나라 살림, 국민 주머니가 축나는 일이 되풀이되는데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면 보통 상황이 아니다.

▷저출산 문제는 이미 1983년 출산율이 2.1명 이하로 나왔을 때 감지되었어야 했다. 그런데도 정부의 예측 실패로 출산 억제는 그 후 13년간 지속되어 세계 최악의 인구 감소 위기를 맞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빗나간 줄 알면서 밀어붙인 ‘준비된 오류’다. 전국의 지하철 이용률이 예측치의 28%에 머물러 해마다 평균 5595억 원의 영업적자가 쌓여가고 있다. 부산지하철의 경우 실제 이용객은 ‘뻥튀기’ 예측의 13%이고 인천 광주도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는 정치와 선심이 스며 있다. 너도나도 지하철을 놓자는, 지역 발전을 내세운 로비와 자치단체장 국회의원들의 ‘암약’이 통계를 왜곡하고 ‘가짜 예측’을 만들어냈다. 청주국제공항의 경우 수요 예측 잘못으로 국제선을 폐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구의 패션단지도 정치가 스며들어 8000억 원짜리 국책사업으로 떴다가 중단되었다. 정략의 대가라고 넘겨버리기엔 낭비가 너무 크다. 정확한 예측을 못하는 것도 죄인데, 숫자를 조작하고 왜곡하는 ‘예측 부정(不正)’을 저지른다면 매국에 다름 아니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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