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교육 독재’의 실험대에 선 학생들

  • 입력 2006년 5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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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전국 24개 대학이 2008학년도 입시에서 내신 반영률을 50% 이상으로 높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교육 당국은 ‘대학의 자율적 결정’이라고 했지만 그렇든 아니든 고등학교 교실은 혼란에 빠졌다.

이번 결정의 첫 대상이 될 고교 2학년생들은 1년 전 입학할 때부터 ‘내신 위주의 입시가 될 것’이라는 교육인적자원부 예고에 따라 치열한 내신 경쟁을 벌여 왔다. 살인적 경쟁을 견디지 못한 학생들은 반대 시위까지 벌였다. 그러다 지난해 말 대학들이 논술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선회하자 논술 열풍이 불었다. 교사들도 ‘앞으론 논술이 입시의 대세’라고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 다시 내신 위주로 바뀐 것이다.

이번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다. 일부 대학은 “합의한 적 없다”고 했다. 정부가 ‘내신 중심 입시’를 하라고 압박하니까 따르는 모양새만 취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시가 실제로 어떻게 치러질지는 그때 가 봐야 알지, 지금은 예측이 어렵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내신 수능 논술을 같이 준비할 수밖에 없는 ‘3중고’에 더 시달리게 됐다. 학생들이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부르는 이 셋 중 어느 게 입시의 중요 변수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사교육비만 늘어날 판이다. ‘자율’을 외치면서도 교육부의 압력 앞에서 오락가락하는 대학들의 모습도 볼썽사납다.

이 정권은 ‘평등’이란 미명하에 ‘교육 독재’를 꾀함으로써 학생들을 계속 고통스러운 ‘실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교육의 전 분야에서 절대 권한을 행사하려 드는 정권과 무기력한 대학 사이에 끼인 학생들은 스스로를 ‘저주받은 89년생’이라고 부르며 불확실성의 공포에 떨고 있다.

그렇다고 내신 입시가 공교육 살리기에 충실한 것도 아니다. 내신이라는 믿을 수 없는 자료를 대학에 강요하는 것은 공교육 회복보다는 강남과 특목고, 비평준화 지역의 우수 고교 같은 특정 고교 집단에 불이익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밝힐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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