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이 인기를 끌던 그 무렵 실제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도둑이 나타나기도 했다. 대도(大盜)란 별칭을 얻었던 조세형이다. 당시 그는 고위층의 집만 털었고, 훔친 물건으로 몰래 가난한 사람을 돕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징역 15년을 살고도 도벽(盜癖)을 버리지 못해 출소 후 일본에서 다시 절도혐의로 체포되면서 본색이 드러났지만, 1980년대 초 그의 범죄 행각은 동정을 살 만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1989년 ‘수사반장’이 막을 내린 뒤 우리나라 범죄도 조직화, 흉포화로 치달았다.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검찰청에 강력부를 신설했지만 ‘지존파’ ‘막가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울 압구정동에 사는 부유층이면 가리지 않고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른바 ‘묻지 마 범죄’의 시작이었다.
지난주 경찰에 붙잡힌 서울 서남부 일대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범행을 세상 탓으로 돌렸다. 2년 전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 내뱉었던 말을 반복했다. “세상이 나를 버려 가난해졌다. 부자들이 싫었다”고 되뇌었다고 한다. 생계형도 복수형도 아닌, ‘사회형 범죄’의 전형이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막연한 적개심의 표출이란 점에서 공동체 붕괴의 징후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증오 범죄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먼저 빈부격차를 꼽는다. 청와대가 올해 초 ‘양극화 심화가 나라의 시한폭탄’이라는 진단을 내린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양극화는 사회적 재앙이며 이를 방치할 경우 부유층과 빈곤층 간에 집단적 소모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진단과 해법에서 ‘증오’가 뚝뚝 묻어난다는 점이다. “승자독식(勝者獨食) 체제의 ‘카지노 경제’에서는 강자의 탐욕이 끝이 없다”거나 “세금을 올려도 상위 20%의 몫이며 그 아래 계층은 별 부담이 없을 것”이라는 식이다. 노골적인 편 가르기의 결과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의도했건, 아니건 ‘20에 대한 80의 증오’라는 사회적 병리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세계가 모두 시장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양극화를 없애기는 사실상 어렵다.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양극화 해소의 명분에 집착해 시장경제를 왜곡하면 되레 사회적 갈등만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시민들은 범죄로부터 보호받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그건 정부가 책임지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막연한 증오’가 ‘묻지 마 범죄’를 부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정부가 통합이 아니라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듯해서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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