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청와대 동아리’

  • 입력 2006년 5월 4일 03시 05분


“나는 오늘 밤 기분이 참 좋다. 대대적인 백악관 인사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며칠 전 백악관 기자단과의 만찬에서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했다. 비서실장 대변인 등을 바꾼 백악관 요직 개편을 두고 한 말이다. 참석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어제 노무현 대통령도 비서실을 대폭 개편했다. 만일 노 대통령이 이와 비슷한 농담을 던진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이번에 내부 승진으로 발탁된 수석비서관들은 모두 노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다. 변호사인 전해철 민정수석과는 한때 해마루 법무법인에서 함께 일했고, 박남춘 인사수석은 노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일 때 총무과장이었다. 이정호 시민사회수석은 핵심 측근인 이광재 의원의 처남이고, 차의환 혁신관리수석은 부산상고 동기생이다.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마태복음) 하는 식으로 친위(親衛)인사를 줄줄이 엮었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는 코드 인사, 이념 과잉, 아마추어리즘, 측근 비리 등이 겹쳐 국정혼란의 진원(震源)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올해 들어서도 국가기밀문서 유출, 아내 살해, 음주 운전 등 기강해이 사건이 줄을 이었다. 이런 마당에 ‘대통령의 남자’들을 또 대거 기용했으니 대통령비서실이 국정의 심장부가 아니라 무슨 ‘동아리’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여론이 아무리 코드 인사의 폐해를 지적해도 청와대는 우리 식으로 가겠다고 작정한 것 같다.

▷대통령도 임기 말이 되면 주변에 모두 ‘자기 사람’을 배치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그래야 권력 누수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민의(民意)의 통로가 막히고, 결국 대통령의 자폐증(自閉症)만 깊어진다. 청와대에 대한 각 부처의 신뢰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역대 정권의 임기 말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지금 그런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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