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덕종]장기 못구해 中으로 달려가는 환자들

  • 입력 2006년 5월 9일 03시 00분


14년 전 어느 날 지독한 당뇨병을 앓고 있던 젊은 환자가 진료실을 찾아왔다. 검사 결과 인슐린을 만들어 내는 췌장의 기능이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당시로서는 건강한 췌장을 이식하는 것 외에는 달리 치료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뇌사자가 기증한 췌장을 이식해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장기 이식은 신장이나 간 심장 폐 등 장기 기능이 떨어져 회복 불능에 가까울 때 병든 장기를 건강한 장기로 대체하는 수술로 현대의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장기 이식 수술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다. 이는 높은 이식 수술 성공률로도 입증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환자에게 이식할 장기를 구하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며 신체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유교적 관념 때문에 장기 기증에 소극적이다. 핵가족화 때문에 환자에게 맞는 장기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은 것도 장기 이식을 어렵게 한다.

선진국 못지않은 장기 이식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기증 장기가 부족하여 이식을 통해 새 생명을 찾지 못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점에서 보면 최근 창립 15주년을 맞은 ‘사랑의 장기 기증운동본부’는 우리나라에서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실제로 장기 기증자와 환자를 연결해 많은 환자에게 새 생명을 찾아 주기도 했다.

뇌사자는 간단히 설명하면 ‘심장의 기능은 살아 있지만 뇌의 기능이 죽은’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뇌사는 엄격한 절차를 거쳐 판정된다. 뇌사자로 판정되면 모든 첨단 의술을 동원해도 뇌사에 빠진 시점부터 약 20일을 넘기지 못하고 심장도 멈춰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국내에서도 뇌사자의 장기 이식 활성화 등을 위해 뇌사를 사실상 죽음으로 인정하는 법이 2000년 마련됐다.

그런데 의학적으로는 뇌의 죽음과 심장의 정지 사이에 있는 뇌사자의 장기는 ‘건강한 장기’여서 이식용 장기로 쓰기에 가장 적합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뇌사자의 장기 기증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나마 최근에는 간이나 신장 등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를 일부 떼어 이식하는 이른바 ‘생체 장기 이식술’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생명이 경각에 달려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환자들 중에는 중국 등으로 가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이식받을 장기를 기다리다 못해 어느 날 병원에서 살며시 나가 버린다. 중국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의 장기를 받아 수술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기증자가 질병에 감염되어 있는지 어떤지도 모른 채 이식 수술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이 내몰린 상황이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다.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겠지만 백척간두에 선 그들의 선택에 돌을 던지기도 힘들다.

국내에서 뇌사자의 장기를 구하기 어려운 것은 기증 장기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제도적인 불합리도 한몫을 한다. 뇌사자 가족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기증하려고 하는데 ‘엄청나게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말 선의로 대가 없이 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까다로워 장기 기증 결단을 내려놓고도 번잡한 절차를 밟다가 번복하는 경우도 많다.

장기 기증 과정이 투명하고 공평하게 이뤄져야 하는 등 윤리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절차가 까다로워 기증을 안 하겠다고 할 정도라면 문제가 있다.

한덕종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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