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에 갖다 놓은 꽃다발은 봄볕에 시들고 있었다.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는 지난해 가을 부임한 뒤 금요 헌화를 시작했다. “한국전쟁에서 피 흘린 미국의 젊은이들에 대한 마음을 이렇게나마 전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누구 말마따나 ‘한집에 살긴 하지만 마음속으론 이미 이혼 준비를 끝낸 것같이’ 꼬여 가는 한미관계를 그는 걱정하는 듯했다.
한가한 금요일 오후답지 않게 300평가량의 공원에 설치된 조각상, 석벽, 부챗살 모양의 인공 연못을 관광객 50여 명이 둘러보고 있었다.
미국은 전쟁 중이다. 이라크전쟁 3년간 미군 사망자가 2300명이 넘자 국민 여론은 바닥을 치고 있다. 그런 나라의 국민은 56년 전의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연못가에는 미군 5만4246명이 희생됐다고 새겨져 있다.
석벽에 씌어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은 가볍게 읽어 넘기는 눈치였다. 그러나 판초 우의(雨衣)를 입은 병사 19명의 조각상은 예외 없이 관광객의 발길을 붙들었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켜 달라는 부름에 응한 미국의 아들, 딸들을 기리며….” 바닥에는 이런 헌사(獻辭)가 새겨져 있다.
조국의 부름을 받아 낯선 동방의 어떤 전쟁에 참여한 미국의 젊은이들. 그들은 신생독립국 코리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다.
숨죽여 헌사를 읽어 가던 로스앤젤레스 외곽 레이크 포리스트 지역의 고교 교사인 마이클 빅 씨가 고개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긴 힘들겠지만, 왜 전쟁에 나서야 했는지를 설명할 기회가 됐으면 한다.”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이미 ‘잊혀진 전쟁’이다. 한국전쟁을 알지 못하는 학생들은 주변에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한국도 변했지만, 미국도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세대가 사라져 가고 있다. 건강한 동맹 유지를 위해 한미 양국 모두 각별하게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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