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부동산 세금폭탄이 운다고?

  • 입력 2006년 5월 11일 03시 03분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 주인공 상환은 강도질로 소년원에 갇힌다. 원생 권록이 시비를 걸자 상환은 면도기로 자신의 배를 긋는다. ‘내 몸에 상처를 내는 데 무슨 짓을 못하랴’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권록은 기가 질려 싸움을 포기한다. ‘조용히 살겠다’는 상환의 게임 목표는 성공했다.

냉전시대 미국과 구(舊)소련은 상대방이 핵 공격을 하면 보복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그러나 선제 핵 공격을 받은 나라는 보복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았다. 핵 보복은 인류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임이론을 창시한 미국의 천재 수학자 요한 루트비히 폰 노이만(1903∼1957)은 소련에 먼저 핵폭탄을 날리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두 나라는 선제공격 대신에 핵 보복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법을 택했다. 자동으로 보복하는 프로그램(auto launching program)을 짜 놓은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구가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핵폭탄을 반드시 쏜다. 양국은 ‘핵전쟁을 피하자’는 목표를 달성했다. 이처럼 게임에서 목표를 달성하려면 신뢰가 중요하다.

현 정부는 부동산을 둘러싸고 자해(自害)수법, ‘세금폭탄 자동보복 프로그램’ 등 갖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건설경기를 침체시켜 서민 일자리 수십만 개를 없앤 것은 대표적 자해수법이다.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은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2009년, 2010년이 돼야 제대로 된 고지서를 받게 된다”며 자동보복 프로그램을 강조했다.

이쯤 되면 ‘부동산’이 꼬리를 내려야 정상이지만 집값과 땅값은 계속 올랐다. 정부로선 강공책으로 일관했던 마당에 물러서기도 어렵게 됐다. 계속 강공책으로 간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다. 부동산 국유화 정도의 핵폭탄을 터뜨리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문을 닫겠지만 부동산가격은 안정될 것이다. 차마 이렇게까지 할 용기는 없다면 게임전략을 다시 짜서 정부 정책에 대한 부동산시장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부동산은 정부 생각과 달리 막나가는 불량 청소년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원리에 순응하는 평범한 학생에 가깝다. 투기광풍 등 전과(前科)가 있었지만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만 원활하게 작동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상을 되찾았다. 반대로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정부가 아무리 혼을 내도 옆길로 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다수의 부동산시장 참여자는 현행 수요억제 정책이 실패한다고 믿고 있다. 게다가 참여정부가 과연 부동산과의 전쟁에 모든 것을 걸지도 의심하고 있다. 불황의 장기화를 가져오는 부동산 세금폭탄은 정권 재창출을 어렵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폭력배나 소련 공산당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한명숙 국무총리는 10일 관계부처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취임 후 첫 부동산 대책회의를 했다. 한 총리는 주택공급 확대와 재건축규제 고수 등 다소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내놓았다. “집값 안정에 대한 시장의 신뢰감이 중요하다”는 총리의 발언은 지당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그런 신뢰를 실제로 형성할 수 있는 정책을 선택하지 못한다면 하나 마나 한 소리다.

시장의 신뢰는 바로 시장원리를 지키는 데서 생겨난다. 또 시장원리란 위협과 통제가 아닌 탐구와 활용의 대상이다. 한 총리가 두 가지 원칙을 숙지한다면 세금폭탄을 쓰지 않고도 부동산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다.

임규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