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옥 저가 매각 대가?=지금까지 검찰이 수사해 온 대상은 현대차그룹이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신사옥 옆에 새로 짓고 있는 연구개발(R&D)센터 증축 인허가와 관련해 금융브로커 김재록(金在錄·46·구속 기소) 씨를 통해 건설교통부와 서울시, 서초구 관계자 등에게 금품로비를 했다는 의혹이었다.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 비자금 수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사안은 현대차그룹이 2000년 11월 농협으로부터 신사옥을 매입한 과정과 관련이 있다.
현대차그룹의 양재동 사옥은 당초 농협이 1999년 완공한 지하 3층, 지상 21층 규모의 신사옥이었다. 농협은 중앙회 사옥과 농산물유통센터로 활용하기 위해 1996년 공사에 착공했다.
농협은 완공을 앞둔 1999년 12월 신사옥 건물에 대한 매각 방침을 정했다. 중복 자산 매각 등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이 매각의 이유였다. 당시 세간에서는 농협 신사옥을 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농민들은 빚더미 위에서 허덕이는데 농협이 좋은 건물에 입주해도 되는 것이냐”고 한 말이 사옥 매각을 추진한 계기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농협 신사옥은 매수자가 나서지 않아 공매가 6번이나 유찰됐으나 현대그룹 ‘왕자의 난’이 일어난 2000년 8월 이후 현대차그룹이 입주할 사옥을 물색하면서 7번째 공매에서 현대차그룹에 넘어갔다.
농협은 2000년 1월 첫 공매에서 최저 입찰가로 3000억 원을 제시했으나 현대차그룹은 그해 11월 이보다 700억 원이 싼 2300억 원에 건물을 매입했다. 매입가의 50%는 일시불로, 나머지 50%는 5년간 나눠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농협은 또 매매 계약 이후 현대차그룹이 신사옥 건물에 1495억 원어치의 담보를 설정하도록 해줬다. 이를 두고 농협이 매각대금 50%만큼 현대차그룹에 담보대출을 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있었다.
▽로비 수사 전망=검찰은 11일 정 회장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 외에 다른 농협 고위 간부로 수사가 확대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대신 검찰은 양재동 R&D센터 증축 인허가와 관련해 건교부와 서울시, 서초구 쪽으로 수사를 계속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비자금 용처와 관련해 검찰 수사에 협조할 가능성이 있어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검찰 수사망에 걸려들 가능성도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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