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언제 폭락할지 모르니 빚내서 하는 부동산 투자는 멈춰야 할 것이다. 더 떨어지기 전에 팔려는 매물도 쌓여갈 것이다.
이 정도는 약과다.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꾸기 어려워진 기업은 자금난에 빠진다. 금융기관에도 부실이 쌓인다. 세금이 제대로 안 걷혀 국책사업이 연기된다.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투자자산의 포트폴리오를 바꾸거나 한국을 떠나려 할 것이다.
“서울 변두리뿐 아니라 지방에서는 집값의 버블이 이미 붕괴되고 있고….” 16일 한 라디오에 출연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의 말이다. 17일엔 재정경제부 간부들이 좀 약한 톤으로 버블에 관한 발언을 이어갔다.
지나가듯 말한 것으로 보아 추 장관은 버블 붕괴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걱정이 된다는 건지, ‘부동산 죽이기’의 성공을 자축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추 장관 발언대로라면 한국 상황이 뉴스가 될 만한데 외신은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업계에서도 ‘겁주기’ ‘희망사항’ ‘확대해석’ 등 풀이가 제각각이다.
추 장관의 말을 뒤집으면 서울 변두리와 지방의 집값에 버블이 상당히 끼어 있었다는 얘기다. 정부는 서울 강남 등 일부에서만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외쳐댔는데 웬 버블이 다른 곳에서 먼저 꺼지는가. 청와대가 ‘버블 세븐’으로 꼽은 7곳 외에도 버블이 더 넓게 퍼져 있다는 점을 시인한 것이라면 심각한 일이다. 발코니 확장 허용이나 판교신도시 아파트 분양 때 ‘오락가락 행정’을 여러 차례 드러내 정책 신뢰를 많이 까먹긴 했지만 그래도 주무장관 아닌가.
정부가 버블 붕괴상황이라고 말하려면 제대로 하는 게 옳다.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가 국민에게 경제현실을 설명하고 경제주체들을 설득해 수습에 나서야 한다. 버블이 왜 얼마나 끼었는지, 어떻게 연(軟)착륙시킬 건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야말로 비상(非常)상황을 전제로 해야 한다. 버블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했어야 할 주무장관이 남의 일처럼 말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조차 모르기 때문인가.
버블은 경제에 나쁘고 버블 붕괴는 더 나쁘다. 9년간 쌓인 버블이 터져 부동산가격이 평균 85% 하락한 일본은 버블 붕괴 초기인 1993년 이렇게 표현했다. “버블은 일단 생기면 자원 배분을 왜곡시켜 경제적으로 큰 비용을 초래한다. 내수를 키워 성장을 높이는 효과는 일시적이고 반드시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속 경기침체)을 동반한다. 버블엔 결점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001년 이후 국내 버블의 존재를 인정하는 전문가가 많다. 작년 ‘8·31 부동산 종합대책’ 때만 해도 정부는 저금리, 무리한 균형개발, 거액의 토지보상금 등을 부동산 폭등의 요인으로 꼽았다. 그 뒤엔 시장 여건을 무시한 ‘부동산 때리기’로 일관했다가 버블을 더 키웠다. 부동산 정책 실패가 버블의 원인에 추가되고 만 것이다.
무리수로 버블을 키운 정부가 이제 와서 딴청을 부리고 ‘버블 붕괴’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하필이면 작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만큼은 투기와의 전쟁을 해서라도 꼭 잡고 말겠다”고 말한 이후 정책이 꼬일 대로 꼬인 게 국민의 불행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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