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귀곤]매니페스토 경쟁… 그러나 환경 공약이 없다

  • 입력 2006년 5월 22일 02시 59분


그린피스의 회원이기도 했던 비외른 롬보르 씨는 그의 저서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통해 많은 환경단체가 과학적 근거를 잘못 이용해 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우리 사회의 환경 이슈에 대한 논의와 운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활발했던 환경 이슈에 대한 논의가 최근 들어서는 이상하리만큼 소강상태다. 생태적 논의에 대한 공통적인 토대가 과학적으로 마련되었기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보다는 검증되지 않은 가정과 낡은 개념, 고갈된 전략이 효율적인 논의를 지속적으로 개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새만금 사업을 비롯해 서울강남순환도로건설사업, 경인운하 건설사업, 경기 용인시와 서울 서초구 양재동을 잇는 민자고속도로, 경부고속철도 2단계 천성산 구간 공사 등은 환경단체들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료되었거나 진행되고 있는 사업들이다. 이들 사업의 공통된 특징은 과학적 근거에 대한 심각한 대립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가정은 서로에게 상흔만을 남긴 채 역사의 평가에 맡겨지게 되었다.

또 5·31지방선거 후보자들의 매니페스토(참공약 선택하기)를 통해서 본 그들의 환경에 대한 시각은 어떠한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의제 속에서 환경 의제를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다. 매니페스토가 가져올 중·장기적 환경영향에 대한 고려 없이 임기 내의 단기적 효과만이 부각되고 있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특정 환경문제를 대상으로 후보자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새로운 ‘매니페스토 대결’의 서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대구 사과가 어딨능교’라는 말이 있다. 평균 기온이 높아지면서 사과의 주산지가 북상한다는 얘기이다. 열섬 효과로 일교차가 작아진 것도 원인의 하나라고 한다. 매니페스토에 담겨 있는 재개발과 재건축 등 각종 개발사업들이 해당 도시의 열섬 현상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도시의 모든 것은 서로 연계되어 있음이 매니페스토에서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환경 문제만을 따로 떼어서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발사업의 문제도 환경과 분리해서 볼 수 없는 문제다. 통합적인 환경관리의 시각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이분법적인 생각은 낡은 개념일 수밖에 없다.

환경 이슈에 대한 전략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예로 도심 하천변 주차장을 들 수 있다. 하천을 정비하여 둔치를 만든 뒤 콘크리트로 포장하여 주차장을 만드는 하천관리방식은 1970, 80년대의 모델이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도시재생운동의 하나로 하천부지를 생물 서식 공간으로 되돌리는 하천 생태 복원 모델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국적으로 엄청난 대수의 자동차가 도시 하천변에 매일 매일 주차되고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에만도 탄천 둔치 주차장, 여의도 샛강 둔치 주차장, 한강 둔치 주차장 등 한강 본류와 지천에서 쉽게 주차장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두 모델 중 어떤 것을 지향할 것인지는 무엇이 우리 도시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또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도시의 지속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정수 처리를 하지 않고도 물을 먹을 수 있다. 석회석만을 호수에 가라앉힌 뒤 그대로 가정에서 마시는 것이다. 뉴욕 시에서도 음용수의 고도 처리보다는 유역의 깨끗한 원수 관리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이 도시들은 단기적인 건설지상주의를 지향하고 있지 않다.

사업 중심의 매니페스토와 전략가치 중심의 매니페스토를 구분해 평가해야 할 때이다. 대안적인 환경 비전과 가치, 장기적인 전략 제시에 대한 점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과학적인 근거와 새로운 가치체계에 바탕을 둔 환경주의가 탄생할 때가 됐다.

김귀곤 서울대 교수 환경생태계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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