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만우]‘한국의 리콴유’를 기대한다

  • 입력 2006년 5월 22일 03시 00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1990년까지 26년간 총리로 있다가 퇴임해 2006년 현재 고문장관을 맡고 있다. 인구 400만 명의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작은 용으로 일으켜 세운 인물이다. 냉철한 현실 감각과 능수능란한 정치술,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정치인으로 20세기 글로벌 리더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을 수 있다.

그는 다양한 정치세력과 손잡고 화합을 통한 상생의 정치를 도모하여 당면한 문제들을 차례차례 해결해 나감으로써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인 금융과 물류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켰다. 또 싱가포르가 세계 최고의 깨끗한 정부로 발돋움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리더의 포용력과 도덕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화합을 위한 용서와 관용, 철저한 도덕성, 이러한 덕목을 그 자신이 실천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싱가포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한국에 와서 강연을 했다. 제20회 인촌기념 강좌에서 그는 “변화를 제어할 줄 알아야 국가가 발전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처음 개방했을 때 한꺼번에 큰 변화를 겪어 혼란에 빠졌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사회적 안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는 노동조합과 경찰이 마치 ‘스타워즈’의 한 장면처럼 싸운다. 에너지를 이런 데 소모하지 말고 세계 다른 나라와 경쟁하는 데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 발전의 3요소는 국가의 안정성, 정책의 지속성, 교육과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할 수 있는 리더십”이라고 제시했다.

변화 속에서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 것이다. 급격한 시대 변화와 저항, 그 저항과의 타협과 화합, 역량 결집에 따른 에너지의 발산, 이 모두는 리더의 역할을 통해 조율된다는 것이다.

앞서 있었던 한국씨티은행 초청 강연에서 그는 “20년 후면 중국이, 한국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모두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일본보다 5배 정도 큰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이미 한국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 분야의 대기업(쌍용자동차)이 중국에 매각된 사례는 그 가능성이 낮지 않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훨씬 자주, 그리고 대규모로 일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의 입지는 중국이라는 거대 경제에 위협을 받고 있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거대 시장을 마음껏 공략할 수 있는 기술 우위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권고다.

변방의 작은 무역항이던 싱가포르를 ‘일류’로 업그레이드했던 리콴유. 그는 우리에게 두 가지 시사점을 던져 줬다. 하나는 창조적 경쟁력의 제고이다. 또 다른 하나는 경쟁 상대가 따라잡을 수 없도록 기술 개발에 편집증적으로 노력하는 기업가 정신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그의 진단과 처방은 비록 과학적인 입증의 대상은 아니지만 상당한 타당성과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싱가포르처럼 한국도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다. 인적 자원을 제외하곤 특별한 자원이 없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런 나라의 정치 지도자는 세계의 흐름을 다른 어느 나라 지도자보다 재빠르게 읽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또 국가의 장래를 흔들 수 있는 교육이나 경제정책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접근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리콴유 같은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만우 고려대 정경대학장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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