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비친 국회의원의 모습이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미 눈 밖에 난 한총련과 같다는 풍자일 것이다. 사실 민생(民生)은 제쳐 두고 정치 이념 싸움에 골몰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낡은 이념에 얽매여 과격 투쟁을 일삼는 한총련 학생들과 다를 게 없다. 한총련이 외치는 민족 반미(反美) 통일 등은 대다수 학생에게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국민이 국회의원들에게 갖는 느낌도 비슷할 것이다.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매달려 나랏일은 소홀히 해 온 게 이 땅의 금배지들이다.
엊그제 5·18민주화운동 26주년을 맞아 광주에는 국회의원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5·18정신을 기린다고 했지만 사실은 5·31지방선거를 의식한 득표 행렬이었다. 얼마 전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시위에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도 가세했다. 일부 여당 의원은 현지에 배치된 군부대와 경찰 철수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한 여당 의원은 “미국이 지주고, 우리 정부는 마름이며, 평택 주민들은 소작인”이라는 말까지 했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합의하고, 국회가 비준한 국책사업을 집권당 의원들이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라크 파병에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대해서도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집권당 의원이 아니라 한총련 대변인 같다.
임시국회 마지막 날이던 이달 2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으로 몰려가 의장의 출입을 막았다. 여당이 의장 직권으로 6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려 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저지하기 위해 여야가 국회 회의장을 장악하는 행태에서 기습 점거가 전공인 한총련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느끼는 이질감(異質感)은 이뿐만이 아니다. 5·31지방선거에 나설 후보를 공천하면서 검은돈을 챙긴 국회의원이 한두 명이 아니다. 17대 국회 들어 유독 의원들의 술자리나 골프장 추태가 많았다.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의원도 있다.
17대 국회 초반 여야는 면책특권 불체포특권 등 의원의 각종 특권을 제한하겠다고 법석을 떨었다. 스스로 허세(虛勢)를 배격하고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의원전용’ 팻말을 떼어 내고 일부 의원이 철도 무임승차권을 반납한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 주민투표로 비리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물러나게 하는 주민소환제를 도입하면서 정작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에는 눈을 감았다.
올해 들어 많은 대학의 총학생회가 한총련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민의(民意)와 거꾸로 가면서 누릴 것은 다 누리는 금배지들에게 국민도 결별을 선언할지 모른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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