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카페]한국주부의 힘

  • 입력 2006년 5월 25일 03시 03분


가전제품 가운데 국내 브랜드에만 있고 외국 브랜드에는 없는 기능이 꽤 있다는 거, 혹시 아세요?

국내 가전업체들은 한국 주부들의 기호와 생활 패턴을 분석해 이에 맞는 특정 기능을 제품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한국형 현지화 전략’입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살림꾼’ 한국 주부들의 요구를 맞추면 기술 진보의 길이 보인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이달 말 LG전자가 출시하는 ‘스팀 트롬세탁기’에는 ‘세탁물 추가’라는 새로운 기능이 있습니다. 세탁 도중 세탁기 문을 열 수 있는 기능이죠. 이 회사의 기존 트롬세탁기는 뜨거운 세탁물로 인한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세탁 시작 후 5분이 지나면 세탁기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세탁 도중 깜빡 빠뜨린 세탁물이 뒤늦게 생각났을 때 외국 주부들은 ‘다음에 세탁하지, 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답니다. 그러나 한국 주부들은 기어코 작동을 멈추고 세탁물을 마저 집어넣기를 원한다고 하네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한국식 살림 철학이라고나 할까요.

한국 주부들은 세탁물 헹굼에 대한 욕구도 강합니다. 외국 브랜드 세탁기가 단 한 번의 추가 헹굼 기능을 지닌 것에 비해 국산 브랜드는 헹굼 횟수를 사용자가 최대 5회까지 자동 조절할 수 있도록 합니다. 외국 주부들은 물과 전기를 각별히 아끼기 때문에 기껏해야 2번 헹군답니다.

2월 출시된 삼성전자의 ‘하우젠 은나노 에어세탁기’는 물 없이 공기만으로 세균과 냄새를 제거할 수 있는 ‘에어 워시’ 기능을 내수용 제품에만 선보이고 있습니다. 삼겹살과 곱창 등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을 즐기는 국민 식성, 건강과 위생을 챙기는 참살이(웰빙) 성향을 두루 감안했다고 하네요.

로봇청소기 시장은 조금 다릅니다. 한국 주부들은 청소기가 어느 정도 소음을 내야 먼지 흡입력이 뛰어난 것으로 간주합니다. 소음을 줄여야 할 국내 가전업계로서는 한국 주부들의 이런 인식으로 기술력을 보강할 시간을 벌고 있는 셈입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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