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가 꼭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 얼굴 생김에 불균형이 심하거나 흉할 만큼 살이 쪘다면 당연히 적극적인 자기관리를 해야겠지. 문제는 멀쩡하게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을 가지고서도 자꾸만 뭔가 부족하다는 결핍감과 콤플렉스를 버리지 못하는 그 강박에 있다. 그 강박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는 걸 엄마는 안다. 개인이 그 거대한 힘에 저항하기 힘들다는 것 또한 안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성형외과 의사 수는 이전의 4배로 증가했고 뷰티산업의 총규모는 한 해 10조 원으로 늘어났다 한다. 온갖 미디어가 눈만 뜨면 예뻐지고 날씬해지지 않으면 인간 값을 제대로 못한다고 은연중 부추기고 있다. 그걸 여리디여린 네 귀가 무슨 수로 당하랴. 급기야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범인이 돼 버려 상대의 외모만을 모든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치졸한 짓을 각자가 저지른다. 친구를 만나면 젊어졌네, 살 빠졌네가 최고 덕담이고 헤어질 땐 빼먹지 않고 부자 되라고 당부하고 다짐한다. 그러는 새 너도나도 돈버는 일과 날씬해지는 일 외엔 별 관심도 흥미도 없는 허깨비가 돼 버리는 게 아닐지 겁이 난다. 그러는 새 너도나도 검정 비닐봉지처럼 가벼워져 제 중심을 심지 깊게 뿌리박지 못하고 맥없이 공중을 부유하는 게 아닌지 두렵다.
모름지기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지금보다 좀 더 예뻐져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강박의 실체를 정면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물론 몸으로 이뤄진 피조물이다. 몸이 곧 제 자신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몸은 겉으로 드러난 피부와 형태만이 전부인 가죽 주머니가 결코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의 발현으로 인간종이 고귀한 것이지 껍데기의 형태만이 오로지 문제였다면 인류가 오랫동안 문명과 역사를 이루며 지구 위에 번성했을 리가 없다. 독서량이나 자격증, 외국어나 문화향유능력 따위는 금방 눈에 보이지 않지만 외모는 반응이 즉각적이라는 너희 주장도 일견 일리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단박에 평가되는 존재가 아니다. 아니 눈 밝은 사람에게는 외모보다 내면이 훨씬 먼저 보이고 세상에는 언제나 눈 밝은 사람의 수가 더 많다.
너는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너만의 개성과 매혹을 태어날 때 이미 가지고 나왔다. 성형외과 의사가 멀쩡한 네 얼굴을 마취해 칼끝으로 헤집어 내 찾는 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영속적인 아름다움, 그게 내 눈엔 훤히 보이는데 너는 자꾸만 코와 눈의 크기를 말하느냐?
자신의 내면과 대화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의 차이와 다양함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몸을 과잉 소비하고 과잉 숭배하는 데 바치는 시간과 정성을 몸 안의 내용물을 채우는 데 바친다면 코가 높아지거나 눈이 커지는 것에 비할 바 없는 당당함과 자아 존중감을 깊은 우물물처럼 뱃속에서 길어 올리게 될 것이다. 절로 우러나는 당당함과 자존, 그러면서 내성적인 시선이 살짝 풍겨 내는 수줍음, 사람에게 그 이상 가는 미는 없다. 자신감과 성찰은 너를 세련되게 만들고 세월이 흐르면 실제로 눈과 코의 사이즈에도 작용하게 될 것이다. 나이 들면서 아연 잘생겨지는 사람을 나는 숱하게 봐 왔다. 그건 성형에서 얻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품격이 된다.
얼굴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아무데서나 거울을 꺼내 들면 수줍음을 잃어버린다. 특히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다중의 눈앞에 거울을 꺼내 들고 제 얼굴을 매만지는 짓은 뻔뻔스럽다. 자기 안의 다채로움을 발견하고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은 곱되 조금 수줍은 법이지. 그 수줍음을 성형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렴.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