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용우]대법관 후보 추천은 인기투표?

  • 입력 2006년 5월 30일 03시 05분


“도대체 누구를 위한 대법관 후보 추천인지 모르겠다.”

7월로 예정된 대규모 대법관 인사를 앞두고 최근 몇몇 단체로부터 대법관 후보로 추천된 A 판사는 추천 마감일인 29일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2004년 대법관 인선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표를 던진 강병섭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의 퇴임사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강 전 법원장은 “재판의 독립은 과거에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었으나 이제는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이라며 “법관은 진보여서도, 보수여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요즘 상당수 법관이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이란 화두(話頭)를 되돌아보고 있다. 대법관 인사를 앞두고 시민단체, 법원 노조, 변호사 단체, 개인 등이 경쟁적으로 ‘자기 사람’을 추천하고 일부는 명단을 공개해 법원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단체는 추천한 후보 명단을 인터넷에 올려 ‘투표’까지 했다.

법원 내부에선 ‘폭넓은 국민 의견 수렴’을 표방했던 대법관 국민 추천 제도가 이념과 성향으로 나뉜 ‘선거판’으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A 판사는 “이렇게 되면 법관들이 법리를 한 번 더 곱씹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튀는 판결을 할까 고민하지 않겠느냐”며 “대법관도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2003년 7월 대법관 임명 파동 이후 민주적인 대법원을 구성하기 위해 대법관 후보자를 국민 누구나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 추천 후보자 명단을 공개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대법원은 같은 해 12월 추천 후보자 명단을 공개하면 자문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는 조항을 추가했다. 명단 공개가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탈락한 당사자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다가 탈락한 한 전직 법원장은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았으나 정작 탈락하자 후배 판사나 직원들의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고 토로했다.

명단 공개가 대법관 인선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서만 판결해야 하는 일반 법관보다 훨씬 높은 전문성과 도덕성 등이 요구되는 대법관을 ‘인기투표’나 여론 몰이식으로 뽑을 수는 없다. 자기 사람 띄우기식의 대법관 추천을 걱정하는 이유다.

조용우 사회부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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