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우려는 미국이 장차 중국과 분쟁을 빚을 때 주한미군을 사용하려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한국이 한반도 밖 분쟁에 말려들어가선 안 된다”고 못 박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노 대통령은 부시 정권의 성향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쟁 참전 문제를 일방적 강압적으로 밀어붙였고 북한 핵 처리 또한 강경 일변도로 처리한다고 봤을 수 있다. 미국은 필요하다고 믿겠지만 다른 나라들은 사려 깊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군사작전에 한국이 발목 잡히는 것을 걱정했던 것 같다.
중국의 군비 증강을 두려운 눈으로 보고 있는 미 국방부 전략가에게 노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놀랍다고 할 수는 없다. 놀라운 것은 두 정부가 이 문제를 조용히 처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약 앞으로…’라는 먼 훗날 이야기는 동맹국끼리 신뢰를 바탕으로 처리할 일이지 공개적으로 반감을 표시할 사안이 아니다. 이러다 보니 전 세계가 한미 동맹의 건강함을 의심하는 것이다.
장래의 위기 시나리오를 다루는 방법은 간단하다. 워싱턴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쓰는 것이 한국에 얼마나 민감한 일인지 상기해야 한다. 한국이 잘못됐다고 믿거나 내심 동의는 하지만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는 어려운 미국의 군사작전이라면 한국 정부가 군사기지 사용을 허용하면서 동의하도록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같은 이유에서 한국도 한반도를 넘어서는 미국의 군사작전을 무조건 배제해선 안 된다. 한미 동맹군은 베트남전쟁 때부터 해외 공동 작전의 경험을 갖고 있다. 한국이 이라크에 3000명을 파병한 것은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고 국제무대에서 지켜야 할 이익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래에 비상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 사안의 성격에 맞춰 한미 양국의 군사적 행동을 결정하면 된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당장 뭔가를 결정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중동 군사전략을 살펴보면 좋은 선례가 많다. 아랍권 동맹국과 나토 동맹국은 군사기지 사용을 두고 미국과 때로는 동의하고 때로는 마찰을 빚었다.
1973년 중동전쟁 때 유럽에선 포르투갈만이 미군기의 급유 목적 착륙을 허용했다. 1986년 리비아 폭격 때 영국은 미군 폭격기의 자국 기지에서의 발진을 허락했지만 프랑스는 영공 통과조차 반대했다. 1990년대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군 전투기의 자국 내 발진을 종종 반대했다. 그러나 이라크전쟁 때는 미군 특수부대의 활동을 묵인했다. 터키는 이라크전쟁 초반 미군기의 영공 통과도 반대했지만 이후엔 수많은 공군작전에 영공 사용을 허용했다. 독일도 이라크전쟁 자체를 강력히 반대했지만 주독일 미군의 파병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5월 1일 브루킹스연구소 세미나 때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에게 이런 견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물었다. 힐 차관보는 공개적으로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그의 답변을 정부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서울과 워싱턴에는 수많은 진짜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 전략적 유연성을 둘러싼 다툼은 가정적 상황을 전제로 한 의견 차이일 뿐 지금 따져야 할 사안은 아니다.
마이클 오핸런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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