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생명을 찌르는 저 주삿바늘… 울고 싶어라!

  • 입력 2006년 6월 2일 03시 06분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동물학과 템플 그랜딘 교수는 최근 펴낸 ‘동물과의 대화’라는 책에서 “쥐를 비롯해 대부분의 동물이 매우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수의학과 박재학 교수는 “많은 연구자가 동물 실험 중에 손끝에서 전달되는 동물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번식력이 뛰어나고 유전자를 조작하기 쉬워 전체 실험동물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생쥐,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 때문에 고통 받는 토끼, 얼굴 표정에 고통이 드러나 연구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원숭이(위부터).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동물학과 템플 그랜딘 교수는 최근 펴낸 ‘동물과의 대화’라는 책에서 “쥐를 비롯해 대부분의 동물이 매우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수의학과 박재학 교수는 “많은 연구자가 동물 실험 중에 손끝에서 전달되는 동물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번식력이 뛰어나고 유전자를 조작하기 쉬워 전체 실험동물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생쥐,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 때문에 고통 받는 토끼, 얼굴 표정에 고통이 드러나 연구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원숭이(위부터). 동아일보 자료 사진
시간 여행과 동물과의 대화가 자유로워진 서기 24세기. 나는 ‘동물 언어통역기’를 챙겨 2006년으로 향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어느 대학캠퍼스의 인적이 없는 회의실. 그 앞에는 ‘금수회의소’라는 팻말이 달려 있다. 잔인하고 비효율적인 실험으로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하는 인간을 성토하는 대회가 열린 것이다.

연구실 안은 생쥐와 쥐, 토끼, 개, 고양이, 미니돼지, 원숭이 등 온갖 동물로 북적였다.

곧이어 동물들이 저마다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관절염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인대가 끊긴 채 기어 다니는 쥐들은 그나마 행복한 편이었다. 두뇌 반응과 신경을 연구하기 위해 산 채로 두개골을 열어놓고 전기 자극 실험을 받고 있는 원숭이들도 있었다.

○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날 때부터 고통받기도

제약회사에서 실험견(犬)으로 애용되는 ‘비글’은 “약물을 얼마나 투여했을 때 죽는지를 알기 위해 사용된다”고 말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아예 태어날 때부터 암에 걸려 평생을 암으로 고통 받는 일도 다반사다. 인간의 욕망을 위해 희생되는 이도 많았다. 개발 중인 화장품의 독성 실험에 사용되는 토끼는 “알 수 없는 물질을 며칠씩 눈에 강제 주입당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각막과 결막, 망막의 생체 반응을 보기 위해서다. 주입 후 4, 5일이 지나면 눈이 썩어서 실명상태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가 적잖다고 했다.

열악한 환경과 관리 부실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많은 동물이 오래된 장비 고장으로 실험에 참여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다는 것.

불과 1년 전인 2005년에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실험용 원숭이 99마리가 정전사고로 사육장 온도가 급상승해 목숨을 잃었다. 실험용 생쥐는 사육장 온도가 34도만 돼도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2004∼2005년에는 전국 38개 실험실에서 생쥐 1776마리, 쥐 484마리가 ‘센다이’라는 바이러스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죽어가는 실험동물 수는 해마다 수백만 마리.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5년에만 500만 마리가 동물 실험으로 죽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사용 목적이 제각각이듯 그 삶의 끝도 서로 다르다. 이산화탄소(CO2) 가스실로 보내지는 동물들은 비교적 행운아였다. 마취 효과로 안락한 죽음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머리를 때리거나 목뼈를 부러뜨리는 등 극단적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 고통 덜어주는 마취제나 진정제 처방 드물어

실험 중 고통을 덜어주는 마취제나 진정제 처방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문제는 자신이 얼마나 태어나고 어떻게 죽어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누구도 실험 뒤 동료의 사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지 못했다. 관리 소홀로 사람에게 감염시켜도 이를 추적할 방법이 없다. 연구소마다 규정이 있다고 하지만 제각각이고 이를 관리할 법규도 없다.

때마침 인간들의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실험동물 관리에 관한 법률안’과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곧 상정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얼마 전 한국생화학분자생물학회라는 단체에서도 동물 실험에 관한 내용을 윤리강령에 포함시켰다. 자체 동물실험을 감독하는 위원회를 두고 있는 기관들은 지나치게 많은 동물을 연구에 사용하거나 연구목적인 불명확한 실험에 대해 재검토를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동물들은 냉소적이었다. 해외 과학 저널들이 비윤리적인 동물 실험을 통해 쓴 논문 게재를 거부하자 뒤늦게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것.

유럽연합(EU)은 2009년부터 동물 실험을 통해 생산된 화장품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살아 있는 토끼의 눈 대신 도축한 지 2시간이 채 안 된 소 눈이나 달걀 수정란을 이용하자는 발상 전환이 이뤄낸 결과다. 회의를 끝내기에 앞서 동물들은 영국 과학자 러셀이 펼쳤던 ‘가급적 다른 실험 방법을 찾아보거나(Replace-ment), 고통을 최소화하고(Reduction), 실험 횟수를 줄이라(Refinement)’는 ‘3R론’을 인간에게 다시 한번 정중하게 제안해 보기로 합의했다. (도움말=박재학 서울대 수의과대 수의학과 교수)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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