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무능한 정부, 영악한 은행

  • 입력 2006년 6월 5일 03시 00분


집권당의 지방선거 참패 원인이 경제정책의 실패로 모아지고 있다. 경기를 악화시켜 서민생활을 어렵게 만들었고, 청년실업을 해결하기는커녕 더 악화시켰고, 아파트 값이 폭등했다. 경제를 망친 ‘죄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 ‘세금폭탄’으로 국민을 괴롭힌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는 여론이다.

현장 확인 않는 정책 失機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문제를 일찌감치 선거 이슈로 삼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파트 값을 잡겠다’는 약속으로 시작했던 ‘부동산 정치’는 “상위 20%에 세금 인상을 해도 나머지 80%는 손해 볼 것 없다”는 대통령 발언으로 본격화됐다. 지방선거를 불과 보름 정도 앞두고는 청와대 인터넷 사이트가 부동산 거품론과 버블 세븐 지역을 언급하면서 바람을 잡아 나갔다.

선거 결과 집권당의 부동산 정치와 선거 전략은 빗나갔다. 유권자들의 판단은 달랐다. 집권당이 지방선거용 전략으로 부동산을 선택한 것을 두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세금폭탄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 전에 다른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아파트 값 폭등을 초래한 부동산 거품은 정부의 정책 실기(失機)가 원인이다. 집권 2년째인 2004년부터 부동산 거품을 조심하라는 경고가 나왔다. 눈 밝은 전문가들은 거품 붕괴로 충격이 예상된다면서 신중한 거품 제거 정책을 주문했다. 그러나 집권 초기의 여당과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부동산 거품을 줄이려는 정책은 그 다음 해나 되어서야 비로소 출현했다.

2005년 7월 초 발표된 주택담보대출 억제 대책은 있으나 마나였다. 아파트를 담보로 1명이 1건 이상 대출받을 수 없게 했다. 은행과 보험사 상호저축은행별로 대출액 비율을 정해 대출액을 제한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파트 현관에는 주택담보대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광고 전단이 휘날렸고 대출 억제의 효력은 서민들에게만 적용될 뿐이었다.

은행들엔 주택담보대출이 매력적이었다. 안전한 돈놀이 장사였다. 정부 정책에 아랑곳없이 은행들은 대출 경쟁에 나섰고 주택담보대출은 급증했다.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월 말 현재 107조 원을 넘어 작년 말에 비해 10조 원이나 늘어났다.

정부는 대출을 억제한다는데 공격적인 대출 영업을 하는 은행이 적지 않았다. 은행에선 편법 대출이 극성인데도 금융감독원의 대응은 늑장이었다. 은행 대출을 억제하면 보험회사나 저축은행들이 나서 대출 경쟁을 벌였다.

은행들의 이런 행태는 처음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이 대주주로 등장한 뒤 은행들은 이익을 내는 데 급급했다. 정부와 함께 벤처기업에 무리하게 지원했던 벤처붐과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발급으로 빚어진 카드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가 무능한 탓인지, 고의적이었는지 모르지만 은행들의 대출 경쟁을 모르는 체했다. 말로만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한다고 떠들었을 뿐이다. 정부가 대출 상황을 점검하고 확인했더라면 세금폭탄을 투하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대출 늘려 이익만 챙기는 은행

아파트 공급을 늘리는 데도 게을렀고 정권 스스로 강조했던 수요 관리도 실패했다. 400조 원의 부동자금과 200조 원에 가까운 주택대출이 투기적 수요의 원천이다. 금리를 올려 부동자금을 잡아 두어야 했고, 주택담보대출이라도 억제했어야 했다.

경제현장을 제때 점검해야 부동산 거품과 같은 정책 실패를 피할 수 있다. 정부가 임대아파트를 늘리겠다고 했지만 보증금이 비싸 자살하는 서민, 아파트 보유세 강화로 강남 못지않게 피해를 본 강북 사람, 상가 임대료 규제 조치로 울상 짓는 임대상인 등이 정책 실패의 피해자이다.

이런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으려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무리한 세금폭탄을 거두고 부동자금과 은행대출의 적절한 관리, 수요에 맞는 아파트 공급 등 시장친화적인 방안을 찾아 부동산 정책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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