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4不 弔問’

  • 입력 2006년 6월 5일 03시 00분


예로부터 고종명(考終命)이라 하여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숨을 거두는 것을 오복(五福)의 하나로 꼽았다. 고종명의 조건은 안방에서 자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는 것으로, 우리 선조들이 객사(客死)를 얼마나 큰 불행으로 여겼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병원에서 임종한다. 집에서 운명했더라도 망자를 병원으로 옮겨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화됐다. 맞춤식 장례절차의 편의성 때문일 것이다.

▷가까운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공자는 “죽으면 예(禮)를 갖추어 장사를 지내야 한다. 상례(喪禮)의 근본은 형식이 아니라 슬퍼하는 마음이다”고 했다. 상례는 고인을 추모하는 예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는 책 속의 얘기일 뿐이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門前成市)지만 막상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다는 속담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인간관계와 그 효용가치를 강조한 한국적 풍자는 지금도 유효하다.

▷문상(問喪)은 ‘1석 5조’라는 우스개가 있다. 자연스럽게 외박을 할 수 있고, 고스톱 장소와 멤버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며, 술과 음식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나중에 상주(喪主)에게서 “밤새 빈소를 지켜 줘 고맙다”는 얘기까지 덤으로 듣게 된다. ‘눈도장’ 찍기 좋기로는 초상집만 한 데도 없을 법하다. 그래서 힘 있는 사람의 빈소에는 언제나 겉치레 문상객이 줄을 잇는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다른 데는 다 있는 4가지가 없다. 술, 담배, 고스톱, 밤샘 조문이다. 기독교식 장례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1996년부터 ‘4불(不) 조문’ 원칙을 지켜 왔다. 그런데 이 병원도 시끌벅적한 ‘한국식 장례식장’으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새 건물을 지으면서 운영 방침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격한 통제로 그동안 ‘손님’이 부쩍 줄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례식장도 시장원리의 예외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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