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만우]‘양극화 풀이’ 아닌 ‘양극 화풀이’ 정책

  • 입력 2006년 6월 9일 03시 04분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트사는 마야 문명이 가장 잘 보존된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다. 치첸이트사의 여러 유적 중 하나인 ‘전사의 신전’에는 산 사람의 심장을 신에게 바치는 풍습이 연상되는 석상들이 놓여 있다. 마야족은 하키와 비슷한 공놀이를 벌여 승리한 팀에서 가장 힘센 선수를 뽑아 그의 가슴에서 뜨거운 심장을 꺼내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가장 힘센 자들을 순차적으로 제물로 바친 결과 열성 유전자만 이어짐으로써 결국은 왜소해져 멸망하는 ‘마야족의 비극’이 생긴 것이다.

청년 실업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자리 만들기의 한 주체인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은 교도소에 갇혀 있고, 이건희 삼성 회장도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관련돼 검찰 소환이 예고돼 있다. 일자리 메이커들이 형사 사건 피고 또는 피의자로 묶여 있는 사이에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청년들은 실업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대기업 규제 정책은 순환출자 해소와 상속세 포괄주의로 요약된다. 삼성그룹 소유 구조를 겨냥한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이 2월 열린우리당의 찬성과 한나라당의 반대로 12 대 11의 첨예한 대립 속에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그런데 에버랜드,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카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는 결과적으로 삼성전자 주가 상승으로 삼성생명 보험 가입자에게 기쁨을 주고 삼성카드와 연계해 매출을 늘리고 있는 삼성전자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황금 연결고리가 되어 있다. 이 고리를 끊겠다면 보험 가입자나 주주들이 좋아할까?

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정에 대한 배임 문제에 대한 수사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사회 결의가 있은 지는 10년이나 됐고 시민단체가 고발한 지 5년이 흐른 시점에 진행되는 일이다. 전환사채는 전환 대상 주식의 가격이 상승해야만 이득이 생기는 것으로서 외환위기 이전에 발행됐던 대부분의 사채가 휴지 조각이 됐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또 세법상 강행 규정인 비상장주식 평가 방법에 따라 발행 가격을 정할 수밖에 없었고 배정받은 주주들이 에버랜드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있는 미실현 이익 상태인 점도 고려돼야 한다. 아무튼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관련돼 이건희 회장 일가는 8000억 원을 국가에 헌납했다. 재산 헌납은 세금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에버랜드 주식을 처분할 경우 발생되는 매매 차익에 대해서는 또다시 소득세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정몽구 회장은 쌍용차, 삼성차, 기아차, 대우차 등 수많은 경쟁자의 무덤을 딛고 세계 7위의 자동차 메이커를 일으켜 세웠다. 완전 포괄주의까지 도입해 점점 빠져나가기 힘든 고율 상속세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무리수를 쓰다가 망신의 굴레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미 1조 원의 사재 헌납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는 매우 힘들게 됐고 자신의 경영권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다. 경영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영업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협력업체 임직원들의 탄원서가 줄을 잇고 있다.

최고 세율 50%나 되는 현행 상속세는 과도한 부담이다. 그리고 주식을 처분하기도 전에 증여로 의제해 미리 세금을 부과하는 규정도 문제가 있다. 현행 세법에 의하면 능력이 있는 자녀를 두고도 생전에 이룬 기업의 절반을 정리해 현금을 마련해야 자녀가 나머지 절반의 기업을 상속받을 수 있다. 시민단체들이 즐겨 쓰는 ‘황제경영’이란 공상소설에서나 나오는 단어일 뿐 실제 기업 경영은 긴장과 고통의 연속이다. 사장을 뽑는 것도 권력을 즐기는 유희가 아니라 기업의 사활이 걸려 있는 고통의 결단인 것이다.

기업가들이 자녀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려는 강렬한 욕구를 적절한 수준으로 보장해야 한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과 기업 소유구조 제약은 기업가의 투자 의욕을 꺾게 되고 결과적으로 투자 위축에 따른 일자리 감소로 공멸하는 ‘마야족의 비극’이 재연되는 것이다.

기업가들의 의욕을 살려 투자를 늘리고 모두가 일자리를 갖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양극화 풀이’ 정책이다.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기업가들을 들볶게 되면 신규 투자와 일자리가 사라져 모두가 불행해지는 ‘양극 화풀이’ 정책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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