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정국]달라이 라마 초청 中눈치 언제까지

  • 입력 2006년 6월 9일 03시 04분


“한국에 가면 삶의 뿌리가 고(苦)와 무상(無常)임을 가르쳐야 한다. 당신 나라는 첨단의 나라, 편리하고 빠른 나라여서 고와 무상을 생각할 틈이 없는 나라니까.”

티베트 불교 지도자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달라이 라마는 20년 동안 자신을 보좌해 온 한국인 청전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가 한국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갖고 있으면 한국인들에게 들려 줄 법문의 방향까지 생각하고 있을까.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처럼 대승불교의 뿌리가 깊은 한국 방문을 강력히 희망해 왔다. 불교계도 그의 한국 초청을 여러 번 추진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항상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8일 서울에서 개막한 ‘2006 세계종교지도자대회’와 15일부터 광주에서 열리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는 모두 그를 초청했다. 달라이 라마는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 주재 한국대사관에 비자까지 신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한국 정부는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정부가 그의 입국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중국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전 스님에 따르면, 요즘 티베트 망명정부 TV에서 “달라이 라마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대회를 앞두고 망명정부 생활을 청산하고 귀환할 것이며 이를 교섭하기 위해 7, 8월경 중국으로 들어간다”고 보도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움직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중국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1982년 호주가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려 하자 중국은 경제 제재를 가할 것이라며 위협했다. 그러나 호주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행복이기에 달라이 라마를 초청해 그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을 것”이라며 압력에 굴하지 않았다. 그 후 호주가 중국으로부터 어떤 제재를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달라이 라마는 올해만 해도 이스라엘, 브라질 칠레 등 남미 5개국, 벨기에 프랑스 미국 등지를 방문했거나 방문할 예정이고 11월에는 일본을 13번째 방문한다. 그가 가고자 하는 나라 중 한국만 아직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 소망은 언제쯤 이뤄질까. 미국에 대해 ‘자주 외교’를 외치는 외교 당국자들이 중국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쩔쩔매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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