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교육위원’이 아니라 ‘교육의원’입니다

  • 입력 2006년 6월 12일 03시 02분


‘교육의원(敎育議員)’이라고 인쇄된 명함을 받는다면 눈 밝은 사람은 ‘교육위원(敎育委員)’을 잘못 썼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니다. 실제로 제주도에서 ‘교육의원’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5·31지방선거에서다. 전국에서 처음이다. 선거 결과가 너무 드라마틱해 교육의원 선거는 전국적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그 의미까지 작지는 않다.

교육의원은 아직 제주도에만 있다. 2월에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에 선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시에서 2명, 서귀포시와 북제주군, 남제주군에서 1명씩 모두 5명이 초대 교육의원이 됐다.

교육의원은 주민직선이다. 선출 과정이 도의원과 똑같다. 임기도 4년이다. 그래서 ‘교육위원’이 아니라 ‘교육의원’이다. 대의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뽑는 교육위원보다 주민의 대표성이 크다. 제주도에서는 2년 후 교육감도 직선한다.

직선이지만 당원은 사절이다. 후보자등록일로부터 과거 2년 동안 정당원이 아니었던 사람만이 후보가 될 수 있다. 당에 공천을 구걸할 필요도 없고 당의 방침에 구속될 일도 없다.

교육의원은 교육 경력이나 교육 행정 경력이 10년 이상, 또는 두 경력을 합해 10년 이상은 돼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출마할 수 있는 다른 의원들과는 다르다. 전문성이 없으면 꿈도 못 꾼다.

제주시에서 교육의원이 된 강무중(61) 씨. 그는 입후보 직전까지 제주도교육청의 교원지원과장이었다. 사표를 던지고 선거에 나서 전문대 교수 3명과 경쟁해 이겼다. 제주교육대 1회 졸업생으로 42년간 교육 외길을 걸어 왔다. 그는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사표까지 내면서 도전할 가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초중고교의 교육을 대학 교수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자신이 ‘모시던’ 교육감과 얼굴을 붉힐지도 모를 처지가 됐다.

서귀포시에서 당선된 고태우(52) 씨는 한라대 관광영어과 교수다. 23년간 후학을 양성하며 제주도 교원단체총연합회장도 두 차례나 지냈다. 그는 “산남산북(山南山北·한라산 남쪽과 북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육 환경이 열악한 제주도 남쪽의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어 체험학습관 건립, 골퍼 스킨스쿠버다이버 관광통역가이드 등을 양성해 자격증을 주는 교육아카데미 설립, 실업계고교 활성화 등의 공약을 내세워 뽑혔다.

특별법에 따라 제주도교육위원회는 폐지되고 심의의결권은 도의회 특별상임위원회로 넘어간다. 상임위는 교육의원 5명과 도의원 4명으로 구성되므로 과반(過半)에다 전문성까지 갖춘 교육의원의 힘은 막강하다.

제주도 교육의원은 몇 가지 교육 현안에 대한 풍향계 역할도 할 것 같다.

직선 교육의원제 도입과 간선 교육위원제 유지 논란도 그중 하나다. 교육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2008년이나 2010년을 목표로 전국의 교육감과 교육의원 직선제를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의 실험이 성공하면 직선제 움직임은 더 빨라질 것이다.

교육공약 책임제가 정착될지도 궁금하다. 교육은 ‘공동 책임’의 그늘에 가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러나 공약을 걸고 당선된 교육의원은 남의 탓을 할 수 없다. 무능한 교육의원은 다음 선거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

홍보 부족으로 교육의원을 뽑아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유권자가 많았던 점은 아쉽다. 도의원 후보보다 지역구가 5∼7배나 넓은 바람에 아무리 땀을 흘리고 다녀도 얼굴 알리기조차 힘들다는 푸념도 나왔다. 합동 토론회나 공동 유세 기회를 주는 등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의원은 ‘특별한 의원’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그러나 남들이 갈 길을 미리 가기 때문이다. 교육계가 이들을 주목하는 이유다. 강, 고 씨에게 첫 교육의원이 된 소감을 묻자 약속이나 한 듯 “출마할 때는 몰랐는데 되고 나니 어깨가 무겁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맞는 말이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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