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명]성숙했던 길거리 응원문화 어디 갔나

  • 입력 2006년 6월 15일 03시 00분


2006 독일 월드컵 한국과 토고의 첫 경기가 열린 13일 밤 서울 청계광장과 서울광장은 길거리 응원전의 메카였다. 이 일대에 모인 50만여 명은 열띤 분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리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14일 새벽 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곳곳에 찌그러진 맥주 캔, 음료용 페트병, 종이 쪼가리 등이 나뒹굴었다. 건물 구석에는 노상 방뇨의 흔적도 있었다.

서울 종로구청과 중구청은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14일 오전 7시경까지 100t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와 비교할 때 2배가 넘는 양이다. 2002년에 비해 거리 응원 행사장 주변에는 노점상이 크게 늘었다. 기업들도 홍보물과 무료 일간지를 무차별 살포해 쓰레기를 늘렸다.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붉은 악마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몇 명의 힘만으로 더럽혀진 거리를 원상 복구하기란 역부족이었다.

한국은 4년 전 세계를 두 번 놀라게 했다. 동아시아의 작은 국가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4강에 오른 것이 첫 번째 경이였다. 대규모 거리 응원전이 벌어진 뒤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모습이 다음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일본 방송은 응원에 참가한 한국 젊은이들이 청소하는 모습과 응원전이 벌어진 뒤 일본의 거리에 쌓인 쓰레기를 비교해 보여 주며 일본 젊은이의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4년 전의 응원 문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많은 시민이 축제의 한마당을 즐긴 뒤 쓰레기를 버리고 자리를 떴다.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폭죽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당국의 부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일부 시민은 112순찰차나 시내버스에 올라가 소동을 부리기도 했다. 중앙선을 넘나들며 굉음을 내는 폭주족의 위험천만한 질주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토고전은 다행히 밤 12시경 끝났기 때문에 그나마 출근 시간 이전에 거리 청소를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오전 4시에 열리는 프랑스전과 스위스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길거리 응원전이 남긴 흉한 뒷모습은 고스란히 노출될 것이다. ‘길거리 응원 국가’로 널리 알려진 한국을 보는 세계의 눈도 달라질 수 있다.

2002년처럼 16강을 넘어 승승장구하길 바란다면 12번째 선수인 시민들도 2002년의 성숙한 응원문화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재명 사회부 e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