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사회협약

  • 입력 2006년 6월 20일 22시 00분


어제 한명숙 국무총리와 각계 대표가 저(低)출산 및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을 체결했다. 1월부터 각계 대표 32명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한 결과라고 한다. 실천계획과 재원(財源) 마련 방안까지 따라붙었지만 ‘각 주체의 성실한 이행 다짐’만으론 사문화(死文化) 우려를 완전히 씻기 어렵다. 참여한 ‘대표’의 대표성 문제도 따른다. 설마 정부가 이 문건을 내보이며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증세(增稅)에 합의했다”는 주장을 펴지는 않겠지.

▷협약의 효용가치를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노사정(勞使政)이 2004년 초 한 달간 10여 차례 회의 끝에 만든 ‘일자리 사회협약’이 시들해진 경험도 있다. 협약엔 ‘일자리가 복지의 기본바탕이자 핵심요건’이라는 등 좋은 말은 다 들어 있다. 그런데 정부는 협약실천에 무능했거나 무관심한 채 ‘양극화 타령’으로 곡조를 바꿨다. 작년 초 노사정을 탈퇴한 민노총은 국면마다 총파업을 외쳤다. 툭하면 싸우는 조직들이 법적 효력도 없는 사회협약을 맺은 것부터가 코미디였다.

▷외국에선 1980년대 이후 사회협약이 약간 늘어났다. 정권, 노동자단체, 재계가 각각 뛰어서는 중요한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며 싸움질만 하다간 모두 손해 본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래도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많다. 협약 체결 후 상황이 바뀌자 변심한 때문이다. 그나마 실천해야 효과가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도 경제사회발전위원회(CDES)가 도출한 ‘새로운 사회계약’ 보고서를 의회에서 최종 결정 받아 국정에 반영했다. 아일랜드는 3년마다 전략보고서를 만들어 실천하고 실적을 점검한다.

▷사회협약은 합의도 어렵지만 실천은 더 어렵다. 우리 정부는 짧은 시간에 ‘뚝딱’ 합의를 잘도 유도한다. 웃으며 사진 찍고 합의문은 액자 속에 넣어 걸어두지만 과연 그만한 실천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투명사회협약, 통일사회협약 등 협약이 많아질수록 가치만 떨어지지 않을까. 이보다는 정치인과 공직자가 취임선서라도 잘 기억하고 지켜 주면 좋겠다.

홍 권 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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