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변명하자면 운동권 출신 집권 좌파(左派)의 독선과 아집 그리고 무능함에 분노해 칼럼을 쓰게 됐다. 주변의 지인들은 내가 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독하게 몰아세워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손보고 싶어 한다는 “×도 모르는 놈들 서너 명” 중 하나가 아니냐고 염려 아닌 염려를 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가문의 영광’이다.
5·31지방선거 참패 이후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에 빠져드는 노 대통령을 보니 아이로니컬하게 내 ‘투지’도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 그의 실정(失政)에 앞장섰던 ‘왕의 남자’들이 발 빠르게 그를 비난하고 나서는 것도 보기 민망하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도 지도자의 역량 때문인 것을. 조선조 세조와 성종의 유능한 신하였던 유자광도 연산군 밑에선 간신배인 ‘왕의 남자’로 변신했다가 중종이 등극하자 연산군을 폭군이라 비난하고 나서지 않았던가.
레임덕이라 해도 제왕적인 한국의 대통령은 여전히 힘이 있다. 노 대통령이 그 힘만 믿고 5·31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의를 외면한 채 남은 임기 동안 좌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나 ‘그릇된 원칙주의’를 계속 고집한다면 그는 우리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참여정부의 좌파적 경제정책 때문에 많은 국민이 고통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시장경제에 대한 확신과 추진력을 갖춘 유능한 전문가를 발탁해 경제 운용에 관한 전권을 넘겨줘야 한다. 그 대신 노 대통령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사법 개혁 하나라도 확실히 챙긴다면 최악이라는 불명예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법 개혁의 핵심은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소비자가 지배하는 (법률)시장을 만드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사법 수요자인 국민이 저렴하게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변호사를 대폭 늘려야 한다. 둘째, 현직 판검사가 변호사 개업을 한 선배 판검사에게 일정 기간 호의를 베푸는 ‘전관예우(前官禮遇)’를 제도적으로 근절해야 한다.
변호사 증원 필요성에 대해서는 4월 26일자 ‘동아광장’의 ‘나는 고발한다, 법조계를’에서 논의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전관예우 문제를 살펴본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이용훈 대법원장은 대법관 퇴임 후 현직에 복귀하기까지 5년간 주로 대법원 사건을 맡아 변호사 수임료로 60억 원을 벌었다고 한다. 전관예우 없이도 이런 고소득이 가능했을지는 의문이다.
누가 전관예우를 이용하는가? ‘유전무죄(有錢無罪)’를 노리는 부자들이다. 가까운 예로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변호인단에는, 담당 재판부가 속한 서울중앙지법을 불과 몇 달 전에 퇴임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 부자가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관예우를 이용한 ‘반칙’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전관예우는 국민의 대리인인 판검사가 주인인 국민의 기대를 배반하고 선배 변호사의 사익(私益) 추구를 돕는 부패 행위다. 이는 또한 판검사가 자신의 미래 이익을 위해 법치 사회의 근간인 사회정의를 짓밟는 행위다. 변호사 출신 대통령과 전관예우를 경험한 대법원장이 이 부패를 척결하지 못한다면 사법 개혁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컴퓨터 화면에 뜬 내 글을 어깨너머로 엿보던 초등학생 아들이 물었다. “아빠, 대통령이 제일 힘센 사람 아니에요? 그러다가 잡혀 가시면 어떡해요?” 권력자에게 쓴소리 하는 일로 연로하신 아버지뿐 아니라 어린 아들까지 걱정하게 만들었다.
노 대통령이 좌파 386의 ‘그릇된 원칙주의’ 주술(呪術)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경제를 살리고 제대로 된 개혁을 이뤄 내길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되면 나는 교수 본연의 임무에 더욱 충실하게 될 것이고, 아버지와 아들은 안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이 추구해야 할 선정(善政)이 아니겠는가.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경제학 igkim@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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