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참살이(웰빙)족의 식단이 아니다. 공영방송 KBS가 6·15남북공동선언 6주년을 맞아 소개한 북한 주민들의 식생활이다. 17일 밤 방송된 KBS 1TV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 ‘KBS 스페셜’의 ‘북녘 음식기행: 고난의 행군 그 후’를 본 시청자들은 “우리보다 잘 먹는다” “북한 홍보 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며 의아해했다.
이 프로그램은 북한의 영상제작사 ‘내나라 비데오’와 한국 다큐멘터리 제작사인 ㈜다큐코리아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대규모 홍수, 가뭄, 냉해로 경제난이 극심했던 1990년대 중반 이후 소위 ‘고난의 행군’ 시기를 북한이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보여 주겠다는 것이 제작진이 밝힌 기획 의도이다.
방송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평온한 일상과 식생활이 소개됐다. 간간이 주민들을 인터뷰하는 질문자도 북한 쪽 제작진이어서 마치 북한 영상물을 보는 듯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대 김일성대를 다니며 평양에서 생활하다 탈북한 본보 국제부 주성하 기자는 방송 내용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북한 주민들이 사료 값이 많이 드는 소와 돼지보다는 풀을 먹고 사는 염소, 오리, 타조 고기를 즐겨 먹으며 힘든 시기를 견뎌 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주 기자는 “일반 주민들은 그 어떤 고기도 먹기 힘들고, 타조는 김정일의 지시로 키우다 거의 다 죽었다”고 전했다. 또 대중적 음식으로 소개된 진달래 화전과 신선로에 대해 “옥수수가 주식인 사람들이 꽃으로 멋 부릴 여유가 어디 있으며 신선로를 구경이나 해 봤겠느냐”고 꼬집었다.
‘KBS 스페셜’ 담당인 김무관 PD는 “취재가 제한된 상황이어서 북한의 기획대로 제작이 진행됐다”며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제한된 취재’를 통해 제작진이 시청자들에게 일깨우고자 한 것은 “북한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여전히 기아와 탈북으로 허덕이는 모습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제작진이야말로 “북한은 지상천국”이라는 터무니없는 선전 공작에 붙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이진영 문화부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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