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서령]축구 구경, 사람 구경

  • 입력 2006년 6월 23일 03시 01분


‘밤을 잊은 붉은 악마’ 길거리 응원 생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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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집된 사람들과 함께했던 내 최초의 기억은 태풍 사라호다. 마을 사람 수십 명이 모여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오무재 위에 앉아 있었다. 초가지붕이 둥둥 떠내려 오고 그 위에서 익어가는 박이 허옇게 배를 뒤집어 보였다. 나무 작대기로 지은 돼지우리가 떠내려 오고 그 안에서 돼지 새끼가 같이 헤엄치고 있었다. 마을 청년 하나가 돼지를 건지러 물살 안으로 헤엄쳐 들어간 것도 같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탄식하고 비명을 질렀다.

사라호는 분명 비극이었지만 일종의 비장한 축제였다. 온 동네사람들이 함께 가슴을 졸이면서 구경하는 평생 처음 보는 ‘큰물’이었다. 구경하면서 사람들은 서로 위로받고 위안했다. 바짝 다가앉은 무릎과 어깨들은 불안과 체온과 눈물을 함께 나눴다.

구한말에 한국에 왔던 영국 왕립지리학회 소속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 그가 기록한 한국의 진풍경 중에 바로 이 구경 좋아하는 한국인의 기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머리 노란 서양여자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비숍의 숙소로 몰려왔고 그 바람에 하룻밤에 서너 차례 그들을 쫓아내야 했으며 심지어 팔을 꼬집고 머리카락을 뽑아가는 이들도 있더라고 적는다.

비숍은 양반과 관료들이 수탈을 멈추고 백성들의 에너지를 모을 계기만 만들어 준다면 한국은 잠재력이 넘치는 나라(식민지로 삼을 만한 나라라는 뜻일까?)라고 제 나라 왕에게 보내는 보고서를 쓴다.

그렇다. 비숍이 어떻게 관찰했건 우리의 유전자엔 호기심과 에너지가 넘쳐나는 게 확실하다. 남들보다 더 힘차게 박동하는 성능 좋은 심장을 가졌고 부여나 고구려 시절부터 ‘수지무지족지도지(手之舞之足之蹈之·손은 춤추고 발은 뜀뛰는)하던’ 신명 들린 피톨이 내장돼 있다.

1960년대 경상도 두메산골 면 단위 체육대회장, 어린 나는 우리 학교의 축구를 응원하러 면 소재지로 갔다. 단위가 작다고 영웅이 탄생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날 우리 팀의 골키퍼 권장시는 삽시간에 면 전체의 영웅이 되었다. 두 배, 세 배 큰 학교들을 제쳐냈다. 우리들은 서로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일체감, 동질감, 성취감이 단숨에 우리를 깊이, 강렬하게 결속했다.

그간 어른들께 숱하게 들은 부당한 꾸지람, 억울한 심부름, 쌓인 원망들이 한순간에 뻥 뚫렸다. 가난이 준 울혈, 어린 나이였지만 어쩔 수 없이 슬쩍슬쩍 맛보았던 무상과 허무도 한순간에 몽땅 날아가 버렸다. 같이 모였다는 것만으로 기운과 격정이 솟아났다. 충만하고 충분했다. 설령 게임에 진다 해도 함께 애석해 하고 함께 분개할 수 있으니 상관없었다. 그게 바로 우리들의 축구였다.

지금 서울시청 앞의 붉은 물결은 저 어린 날의 눈물범벅에 연결돼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들 월드컵의 과잉을 걱정한다. 월드컵 열풍에 파묻혀 다른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다고 혀를 차고 월드컵 보느라 낮에 업무를 소홀할 수밖에 더 있느냐고 질타하고 일탈과 광기를 부추겨대는 상혼을 근심한다.

맞는 말이다. 맞지만 너무들 걱정할 필요 없다. 흙탕물이 안마당까지 들이찼을 때도 산꼭대기로 물 구경을 가던 할머니의 후손이 어찌 제 나라 선수가 역동적으로 뛰는 게임을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일상의 비루함과 압박을 우리는 축구에서 잊는다. 이토록 간단하고 쉽게 온갖 편 가름과 이기심을 털어버릴 수 있는 스포츠가 또 어디 있으랴. 겉으로 새침하게 냉정을 가장했지만 우린 사실 이렇게 한 덩어리로 뭉치기를 얼마나 갈망했나.

시청 앞 응원 인파가 100만 명이 넘었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안심해도 좋다. 우린 이미 광기까지 치닫지 않을 만한 가치 다양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DNA에 새겨진 감정의 결을 냉철하게 다스리는 이성주의자들도 많아졌다. 내 주변엔 의연하게 텔레비전을 끄고 이 기회에 노자나 읽겠다는 사람도 있고 냄비처럼 들끓는 애국심과 상업주의를 경계하자고 반월드컵 카페를 만든 사람도 있다.

나야 나이도 뭐도 다 잊고 스물 몇 살 아이들과 똑같이 양 뺨에 태극기를 얼얼하게 비벼 박고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지만 반월드컵 카페를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다. 도리어 내심 흐뭇할 지경이다. 저런 친구들이 반대쪽에서 균형을 잡아주므로 내가 정신없이 박지성을 향해 소리소리 지를 수 있는 것이다.

저 사라호의 날 할머니는 집에 돌아와서 말씀하셨다. “야야, 내사 물 구경보다 사람 구경이 더 장관이더라.” 실은 축구보다 거기 모인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어 나는 내일 새벽 시청 앞에 갈 거다. 이기면 좋겠지만 진다고 해도?

앗, 아직 이 말은 금기다!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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