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72) 전남 장성군수가 1995년 민선 1기부터 군정을 이끌면서 얻은 별명이다. 작고 마른 체구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는 ‘주식회사 장성군’의 최고경영자(CEO)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민선 자치 출범 이후 지금까지 중앙부처와 언론사, 경제단체가 주는 상을 휩쓸어 106억 원의 상금을 받았다.
민선 1기부터 내리 3선을 했던 김 군수는 30일 퇴임한다. 김 군수를 만나기 위해 23일 군수실을 들렀는데 다소 어수선했다.
주민 20여 명이 석산개발 업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대책을 세워 달라고 호소하는 중이었다.
김 군수가 해당과에 민원을 접수시키고 대표를 뽑아 다시 논의하자고 하자 주민들은 “군수님 말을 믿고 기다리겠다”며 자리를 떴다.
“이 정도 민원은 대화로 해결할 수 있으니 다행이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민원에는 군수의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김 군수가 민선 초대 군수로 취임한 직후 일이다. 관선 군수 시절에 확정된 황룡면 쓰레기매립장 건설사업이 주민 반대에 부닥쳤다. 황룡면은 김 군수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
주위에서 “못 이기는 척하고 고향 사람들 뜻을 받아 주는 게 어떠냐”고 말했지만 그는 “입지 선정에 문제가 없는데 무슨 소리냐”며 밀고 나갔다.
“그때 흔들렸다면 지금까지 매립장 문제로 시달렸을 겁니다. 군수는 보고 싶은 현실만 봐서는 안 되고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3선 비결을 물었다. 그는 발로 뛰는 ‘현장 행정’과 각별한 처신 때문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1기 취임 때부터 3년간 김 군수는 오전 5시 반이면 일어나 읍·면·이장에게 전화를 걸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이장들은 “나 군수요. 동네에 무슨 일 없어요”라고 묻는 군수에게 놀랐다. 대화를 통해 김 군수는 시시콜콜한 동네일부터 공무원 누구누구는 행실이 좋지 않더라는 얘기까지 듣게 됐다.
이러다 보니 군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알게 됐다. 현장 점검을 소홀히 하거나 공무원으로서 품위를 지키지 못하는 직원은 문책을 당했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걸려 오는 안부 전화에 감동해 이장들은 다음 선거 때 김 군수를 지지하리라 다짐했다.
그는 “재임 기간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저녁은 반드시 집에 가서 먹었다”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몸조심했다”고 털어놨다.
김 군수는 사범학교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와 행정 공무원, 교육위원을 거쳐 기업체에서 부사장을 지냈다. 형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다.
둘째 형 광식(75) 씨는 한국육가공수출협회장, 여동생 필식(64) 씨는 동신대 이사장이다. 막내 동생이 김황식(58) 대법관이고 바로 아래 매제는 허진규(67) 일진그룹 회장.
공무원과 기업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는 경영 마인드를 행정에 접목하고 특유의 리더십으로 장성군을 이끌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홈페이지 개설(1995년), 전국 최초 전자 결재 시스템 도입, 군 단위 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이미지통합(CI) 실시, 토지민원행정 종합전산망 구축(1997년)….
그의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 준 게 모 방송사와의 분쟁이다. 1997년 홍길동 출생지임을 내세워 캐릭터를 개발하던 중 TV드라마 ‘홍길동’을 방영한 모 방송사와 마찰이 생겼다.
방송사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자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는 반응이 많았지만 김 군수는 서울 본사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등 싸움을 진두지휘했다.
전국적인 이슈가 되면서 방송사는 결국 캐릭터 사업을 포기했다. 장성군은 수십억 원이 들 광고비를 한 푼도 안 들이고서 홍길동 캐릭터를 전국에 알리는 효과를 거뒀다.
그는 1996년 정부를 상대로 사업비 2183억 원을 따낸 일을 회고하며 예산 확보의 노하우를 들려줬다.
군사 시설인 상무대 추가 확장 반대 여론이 들끓자 국방부 등 중앙 부처를 찾아다니며 기피 시설을 받아들이려면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담당 공무원에게 이 사업만은 꼭 성사되어야 한다며 현안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설명했다.
“푸념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또 담당자가 사업 내용을 보고 꼭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계획을 잘 짜야죠. 정관계 및 재계 인사에 대한 인맥 관리도 결코 소홀히 해선 안 됩니다.”
김 군수는 민선 4기를 여는 후배 단체장에게 충고를 잊지 않았다.
“군수는 말이죠. 모름지기 강단이 있어야 합니다. 표를 의식하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다가 임기가 끝납니다. 원칙과 소신이 없으면 군수 노릇 제대로 못해요.”
그는 “대학과 기업체, 정부기관의 초청 강연이 밀려 있어 퇴임 후에도 한가롭게 지내지 못할 것 같다”며 웃었다.
장성=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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