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경제부총리 실패학’

  • 입력 2006년 7월 7일 03시 08분


경제부총리는 흔히 경제팀 수장(首長)으로 불린다. 미국이나 일본에도 경제장관들은 있다. 하지만 장관이 ‘그냥 장관’이 아니라 한 단계 높은 지위에서 전반적인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자리가 우리나라 경제부총리다.

이 제도가 생긴 것은 1964년 5월이었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장기영 씨가 초대 부총리였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 한때 폐지됐다가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잇따르자 2001년 1월 부활됐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남긴 ‘거물급 부총리’로는 장기영 김학렬 남덕우 신병현 씨 등이 꼽힌다. 일부 부정적 유산(遺産)도 있지만 한국의 경제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반면 ‘주사급 부총리’로 불린 이도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김진표 이헌재 한덕수 씨 등 세 명의 경제부총리가 배출됐다. 개인적으론 ‘가문의 영광’일지 모른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모두 그동안의 ‘점수’마저 깎아먹고 추락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김진표 씨는 엘리트 관료가 시류(時流)에 따라 얼마나 표변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그가 걸어온 길을 아는 사람들은 “출세를 위해선 저렇게까지 달라질 수도 있구나”라며 혀를 내두른다. 경제에 이어 교육부총리도 거친 그는 지금 ‘경제와 교육을 함께 망쳤다’는 말까지 듣는다. 그나마 여당 의원직을 유지하는 걸로 위안을 삼고 있을까.

한때 ‘구조조정의 달인(達人)’이란 평가까지 들으며 각광을 받았던 이헌재 씨도 이미지를 버렸다. 그는 가끔씩 정권 내의 ‘반(反)시장-좌(左)편향적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불편한 속내도 드러냈지만 정면으로 맞설 엄두는 못 냈다. 퇴임 후는 더 괴롭다. 많은 측근이 불미스러운 일로 곤욕을 치르고 있고 본인도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른다.

6일 경제부총리로서 마지막 정례브리핑을 한 한덕수 씨를 두고 일각에선 ‘공기 같은 경제팀 수장’으로 불렀다. 공기처럼 없으면 안 될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리더십 부재(不在)였다는 의미다.

세 명의 전현직 경제부총리는 경제관료 출신이다. 평소 시장과 경쟁을 중시한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재임 기간에 보여 준 모습은 딴판이었다. 대통령은 물론 새파랗게 젊은 386 실세(實勢)들의 폭주(暴走)에도 제대로 ‘노(NO)’라는 말도 못하고 휘둘렸다. 어느 경제학자는 “무능함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려는 ‘피터의 원리(Peter Principle)’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권오규 대통령정책실장이 차기 경제부총리로 내정됐다. 그가 유능한 관료라는 데는 별로 이견이 없다. 하지만 경제 실정(失政)에 책임을 져야 할 요직에 있었다는 점과 최근 논란이 된 ‘스웨덴 모델’에 대한 시각 변화에서도 드러난 권력 추종형 처신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권 부총리 내정자는 경제부총리란 자리의 무게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을 힘들게 하는 ‘사이비 시대정신’이 아니라 정말 시대적으로 필요한 역할이 무엇인지 고심하리라 믿고 싶다. 멀리 갈 것 없이 전임 부총리들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 ‘실패학’이나 ‘실패의 연구’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피터의 원리가 또 한번 입증된다면 본인이나 나라를 위해 모두 불행이다.

권순활 경제부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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