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후지쓰배서 첫 세계대회 우승 박정상 6단

  • 입력 2006년 7월 7일 03시 09분


박정상 6단이 3일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뒤 우승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월간바둑
박정상 6단이 3일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뒤 우승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월간바둑
박정상(22) 6단은 후지쓰배 결승 전날인 2일 부채를 샀다. 자꾸 흔들리는 마음, ‘준우승만 해도 잘한 게 아닐까’ 하는 유혹을 떨쳐 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부채에 ‘죽을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썼다. 약속은 꼭 지킨다는 의미에서 이름 석 자도 썼다. ‘박 정 상.’

프로기사들도 세계대회 결승을 앞두면 승부의 중압감 때문에 차라리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진다. 박 6단은 흔들리는 마음을 부채로 달랬다.

박 6단은 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후지쓰배 결승에서 중국의 저우허양(周鶴洋) 9단을 꺾고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국내 정규 기전 우승 경험이 없는 그의 후지쓰배 우승은 의외의 뉴스였다. 그는 8강에서 일본의 하네 나오키(羽根直樹) 9단, 4강에서 한국의 최철한 9단을 물리쳤다.

그는 “준결승과 결승을 앞두고 최 9단과 저우 9단의 기보를 열흘간 200국 이상 연구했다”며 “미리 준비해 간 포석이 나와 편하게 둘 수 있었다”고 우승 비결을 얘기했다. 국제대회 우승 덕에 그는 9단으로 승단될 예정이고 군복무도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하게 됐다. 박 6단은 지독한 공부벌레로 유명하다. 가끔 동네에서 축구하는 시간을 빼면 온통 바둑에만 집중한다. 하루 7∼8시간 공부는 기본이다.

하지만 성적은 공부에 비례하지 않았다. 1년 연하인 최철한, 박영훈 9단보다 늘 뒤졌다. 두 사람이 국내외 기전에서 우승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박 6단은 그저 신예 기전에서 한 번 우승한, 가능성 있는 기사였을 뿐이다. 이세돌의 타개, 최철한의 공격, 박영훈의 끝내기에 비하면 박 6단은 딱 떠오르는 장점이 없다. 실리를 챙긴 뒤 가볍게 타개하는 능력이 좀 뛰어난 정도랄까. 세계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자신에 대한 그의 평가는 여전히 냉정했다.

“세계 최강은 ‘이창호 이세돌 구리(古力)’ 3명이고 바로 아래에 ‘최철한 박영훈’이 있습니다. 저는 그 아래에 있고요. 아직은 그들과 실력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천재란 없는 거죠. 남들보다 10배 노력하면 일류가 되고 그보다 10배 노력하면 최고가 된다고 믿습니다.”

그의 우승에는 부모의 애틋한 정성이 녹아 있다. 교육자인 아버지 박병희(중앙중 교감) 씨는 지독한 장난꾸러기인 초등학생 아들에게 침착성을 길러 주기 위해 바둑을 가르쳤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역작용이 생겼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가르치려던 바둑을 계속하겠다고 아들이 고집을 부렸다. 아들은 “일단 대학에 진학한 뒤 다시 바둑을 두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고집을 끝내 꺾을 수 없었다.

어머니 최민경 씨는 1996년부터 아들과 교환 편지를 쓰고 있다. 지금까지 오간 편지는 1000여 통. ‘내 아들인 것이 자랑스럽다, 사랑한다, 힘내라….’ 어찌 보면 평범한 내용이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늘 아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부모님은 저에게 한번도 바둑의 승패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잘했다’ ‘열심히 해라’가 전부였죠. 그게 오히려 힘이 된 것 같아요.”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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