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미석]내 삶을 낭비한 죄

  • 입력 2006년 7월 8일 03시 00분


밤늦은 시간에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는데 귀에 익은 선율이 흘러나왔다.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이대로 곁에 있어 주세요∼.’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7080세대에 가까울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들었던 듯한 이 노래를 열창하는 가수나 따라 부르는 중장년 방청객들의 얼굴 모두에서 숨길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엿보였다. 무심결에 흥얼흥얼 나도 따라 부르다 문득 추억 속 풍경 하나가 떠올랐다. 한밤중 소파에 누워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나들이한 옛 가수들의 흘러간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시곤 하던 어머니. 그 얼마 전 모습과 지금 내 모습이 어느덧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때 어머니도 깨알 같은 글자들이 조금씩 아른거려 보이고 어깨가 결리기 시작하는 나이였을까. 새삼 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명치끝에 얹힌 듯 가슴이 뻐근해졌다.

나이가 찰수록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 것인가. 올 한 해 잘해 봐야지, 이런저런 다짐과 약속을 한 게 정말 어제 같은데 훌쩍 1년의 반 토막이 지났다. 속절없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 나가는 바닷가 모래와도 같은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은 역시 그 옛날 보았던 영화 ‘빠삐용’에 대한 상념으로 이어진다.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빠삐용은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외딴 섬에 유배돼 처절한 나날을 보낸다. 이 영화에서 내게 잊혀지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큰 죄는 바로 귀중한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대사였다. 아무리 영화 속이라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내 인생 내가 낭비한 것이 그처럼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할 만큼 큰 죄가 될 수 있다는 설정에 아연했다.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하니 조금은 알겠다 싶다. 내 삶을 허송하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죄인지를…. 그 죄는 단순히 내 삶을 낭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음주운전처럼. 내가 잘못 살면, 나를 위해 주고 아끼는 사람들의 가슴이 무너질 것이다. 조직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죄의 파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나로 인해 영향 받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므로. 더 나아가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국민의 호의를 낭비한 죄’ ‘국민의 꿈을 탕진한 죄’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 삶을 똑바로 제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곧 나를 위하고 가족과 이웃을 위하고 국가와 민족까지 위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살아야 ‘내 인생을 낭비한 죄’에서 ‘유죄 선고’를 피할 수 있을까. 92년의 일생 동안 하루 평균 그림 7점을 그려 냈다는 피카소처럼 살아야 하나. 그는 60세에 석판기술을 배우고 70세가 되어서는 도공이 되는 등 평생을 쉼 없이 스스로를 개조하며 살았다. 그의 마지막 걸작품은 결국 그 자신의 인생이었던 셈이다. 나보다 몇 살 위인 빌 게이츠는 10년이 넘도록 세계 1위 부자로서, 그 엄청난 재산을 남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고 이제 자기 재능까지도 사회에 바치겠다고 한다.

이들이 보여 준 삶의 텍스트는 나 같은 보통 사람이 따라하기에는 너무 높은 경지에 있는 듯해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곰곰 생각한 끝에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으로 내린 결론은 너무 소박했다.

‘내가 몸담은 현실에서, 내가 가진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온 힘 다해 하는 것.’

자, 여러분의 결론은?

고미석 문화부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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