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세계철학자대회 기조연설 이광세 美켄트주립대 교수

  • 입력 2006년 7월 8일 03시 00분


동서비교철학의 권위자인 이광세 미국 켄트주립대 교수. 그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대립의 관점이 아니라 상호 보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양자가 공명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명  기자
동서비교철학의 권위자인 이광세 미국 켄트주립대 교수. 그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대립의 관점이 아니라 상호 보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양자가 공명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명 기자
“동양철학을 타협이나 절충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은데 이는 중도(中道)의 개념을 오해한 것입니다. 중도는 양 극단을 피하면서 여러 대안이 지니는 장점들을 찾아내려는 것으로 오늘날의 다원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2008년 한국에서 열리는 제22차 세계철학자대회에서 동서비교철학을 주제로 한 기조연설을 맡은 이광세(72) 미국 오하이오 주 켄트주립대 교수가 방한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에 재학 중 미국 유학을 떠나 예일대에서 칸트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동양철학에 심취해 동서비교철학의 권위자로 인정받으며 김재권(브라운대), 정화열(모라비언대), 조가경(뉴욕주립대), 승계호(텍사스대), 김상기(남일리노이대) 교수와 함께 미국 철학계에서도 명성이 높은 한국인 철학자다.

그가 발표한 동서비교철학 논문 15편을 엮은 ‘동양과 서양 두 지평선의 융합’(1998년)은 지난해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선보인 ‘한국의 책 100권’에 선정돼 영문으로 출간됐다. 본인이 직접 번역해 ‘East and West: Fusion of Horizons’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는데 그동안 발표한 9편의 영문 논문이 추가됐다.

6일 동생인 이광자 서울여대 총장의 집에 머물고 있는 그를 만나 동서철학의 접점을 찾아가는 그의 지적 여정(旅程)의 성과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교수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대립적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공명(共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 서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중도의 지혜를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것이 바로 동양철학의 특징이라는 것.

“서양철학이 기독교와 플라톤 철학의 목적론적, 직선적, 일원론적 세계관에만 젖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양철학의 전통 속에서도 자연적, 순환적, 다원론적 세계관이 엄연히 숨쉬고 있습니다.”

그는 존 듀이의 프래그머티즘과 리처드 로티의 포스트모더니즘, 존 롤스, 심지어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 철학에서 동양철학과 공명하는 요소들을 찾아낸다.

“듀이는 뉴턴의 과학관에 영향을 받은 존 로크의 원자론적 개인주의를 낡은 개인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도덕적이고 상호의존적 개인주의를 ‘새로운 개인주의’로 강조했습니다. 듀이의 사상에서는 인드라(제석천) 신의 그물에 걸려 있는 보석들이 서로서로를 비추면서 무한히 확산되는 화엄경의 비유에 담긴 상호의존성, 맹자가 말한 자득(自得)과 자임(自任)의 도덕적 개인주의도 발견됩니다.”

도를 깨닫는 것은 개인적 노력의 결과라는 ‘자득’이 개인의 자각을 말한다면 책무를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자임’은 그런 자각이 도덕적 책무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불교의 무(無)와 공(空) 사상도 이런 맥락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무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원자론적 개인을 부정하는 것이고, 공은 그냥 텅 비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기적 개인주의를 부정하고 만물의 상호의존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개념입니다.”

이 교수는 “이성은 감성의 노예가 돼야 한다”며 정의의 근거를 이성보다 동감에 둔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사상이, 측은지심의 어진 마음에서 정의의 근거를 찾은 공자의 사상과 상통한다고 지적했다. 또 인(仁)의 외적 표현으로서 공자가 강조한 예(禮)는 “설명은 없다, 서술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선언한 비트겐슈타인, 추상성보다 일상성을 강조한 하이데거, 미국 사회에서 정의가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정의론’을 집필한 존 롤스의 철학 속에 담긴 관습(social practices)의 존중과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존 듀이와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를 가장 중요한 3명의 철학자로 꼽고 있는 로티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야말로 동양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근대에서 탈(脫)근대로의 진전은 곧 서양 주류 사상에서 간과됐던 이런 요소들의 복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과연 근본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의 위협이라는 근대적 폭력에 위협받고 있는 우리의 삶이 과연 탈근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교수는 “중도의 철학은 추상적 이념보다 민생을 앞세우고,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친소(親疏)의 구별을 두고 가까운 것에서부터 실천을 강조한다”며 “자민족 중심주의와 세계시민주의가 교차하는 오늘날의 많은 문제는 이런 중도의 지혜를 통해 풀어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50여년간 미국 생활을 하면서 여전히 한국 국적을 지켜 온 노철학자의 충고에는 이념과 원칙의 충돌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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