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햇볕’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 입력 2006년 7월 15일 03시 00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햇볕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8년간, 햇볕을 쬐일 만큼 쬐였지만 길 가는 나그네는 외투를 벗지 않았다. 햇볕 때문에 금강산 관광길도 열리고 개성공단도 생겼다지만 우리가 쏟아 부은 돈과 동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했던 수모를 생각하면 큰 성과라고 하기 어렵다. 부산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그런 모욕을 당하고서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쯤에서 햇볕정책의 미망에서 깨어나야 한다. 어떤 정책이든 절대적일 수는 없다.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독창적 산물도 아니다. 이론상으로는 기능주의에 뿌리를 둔 대북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화해와 협력을 통해 북을 감싸 안음으로써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인데, 대대로 이런 정책을 안 쓴 정권이 어디 있는가.

멀리는 1960년대 초 장면 정권에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북한을 포용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이라고 북과 대결만 한 것은 아니다. 전두환 정권을 보더라도 1982년 ‘인천-진남포항(港) 상호 개방’을 포함한 20개 시범사업을 제시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이처럼 포용정책은 시대를 초월해 한국사회의 보편적 대의(大義)였다. DJ는 여기에 ‘햇볕정책’이란 절묘한 이름을 붙여 상대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앞선 정권들이 인프라를 깔아 줬기에 가능했다. 노태우 정권이 1980년대 말∼1990년 대 초의 탈(脫)냉전기에 북방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햇볕 얘기를 꺼낼 수 있었겠는가. YS 정권이 하나회 해체를 통해 군(軍)을 문민화하지 않았다면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충격적 대북정책이 보수층의 반발 없이 성사될 수 있었겠는가. YS 때인 1994년 10월에 나온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는 말할 것도 없다. 이 합의가 10년 가까이 북핵 문제를 붙잡아 주었기에 DJ는 남북 화해 협력에 매달릴 수 있었고, 결국 노벨 평화상까지 탄 것 아닌가.

햇볕정책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특정 세력의 전유물도 아닐뿐더러 대북정책의 적실성(適實性) 여부를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도 아니다. 북한을 구원하는 무슨 신묘한 정책은 더더욱 아니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통하지만 안보상 위협이 생기면 통하지 않는다는 취약점도 있다. 그런데도 햇볕정책을 지지하면 자칭 ‘진보’이고, 반대하면 ‘수구’인가.

춥고 어두운 북녘 땅에 햇볕이 들게 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방법과 효과다. 햇볕정책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햇볕을 쬐이더라도 어떤 원칙을 갖고 쬐여야 한다고 믿을 뿐이다. 북이 약속을 어기거나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불이익이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하자는 얘기다. 어떻게 해서 이런 사람들이 ‘수구 꼴통’이 되고, ‘퍼주기’ 하자는 사람들은 ‘진보’가 되는가. 대체 그것이 누구의 법인가.

햇볕정책은 이미 정치화돼 버렸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이 민주화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안보를 도구로 이용했다면 지금은 운동권 세력이 보수 우파를 공격하기 위해 햇볕정책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DJ의 햇볕정책을 계승했다는 이 정권에선 더 심하다. ‘햇볕정책’이란 표현만 ‘평화·번영정책’으로 바꿨을 뿐 더 강한 이분법적 현실 인식을 보여 준다.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야당과 언론의 비판을 ‘안보 장사’로 몰아붙일 정도다.

정치화된 햇볕정책은 정책으로서도 효용성을 잃었다. 햇볕정책이 성공하려면 이쪽의 의도가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시간이 걸릴 뿐, 결국 동화(同化)를 통한 북 체제의 해체가 목적임을 북이 다 아는데 아무리 햇볕을 쬐인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고려대 현인택(국제정치) 교수는 “(역설적으로) 포용정책은 어떤 봉쇄정책보다 더 적극적인 변화 유도 정책”이라고 한 적이 있다. 북을 감싸 안지만 결국 형체도 없이 녹여 버리는 더 혹독한 정책이라는 얘기다. 당사자인 북이 이를 모르겠는가. 잘 알기에 받을 것 다 받고 뒤돌아서서는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런데도 햇볕정책을 고집해야 하나.

효과도 없고, 좌우 갈등만 심화시켜 우리 사회의 적의(敵意)의 총량만 늘리는 햇볕정책은 버려야 한다. 햇볕은 우화(寓話) 속으로 돌려보내고, 상호주의가 살아 숨쉬는 새로운 대북정책의 틀을 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북으로부터 또 무슨 행패를 당할지 모른다.

이재호 수석 논설위원 leejaeho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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