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를 서두르는 당신의 휴대전화에 소방방재청에서 보낸 이런 문자메시지가 뜬다. 얼마나 위험한 걸까. 길이 많이 막힐까. 굵어지는 빗발을 보며 불안해지지만 출근을 포기할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도로와 지하철이 깔린 신도시에 살고 있지 않은가.
10일 오후 3시 또 다른 당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귀가할 시간이다. 태풍이 온다지만 바닷가도 아닌데…. 그러나 우산을 쥔 아이의 몸까지 날려 버릴 것 같은 비바람의 기세가 불안하기만 하다. 아이를 데리러 나서며 당신은 생각한다. 장마가 있는 한국에서 어느 해인들 여름에 이만 한 비가 안 오겠는가.
지난주 토요일 이후 제주도부터 강원도까지 전국을 휘몰아친 비와 바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4일 현재 태풍 에위니아와 잇따른 수도권 집중호우로 11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어떤 희생인들 가족이 겪는 고통이 더하다 덜하다고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등하굣길에서 빚어진 어린 학생들의 희생은 유난히 무참하다. 눈감고도 다닐 만큼 익숙한 길을 걸으며 미처 두려움을 깨닫지도 못했을 아이들이다.
경남 진주에서는 학교에 가던 고교생이 빗길에 버스가 강으로 곤두박질쳐 희생됐고 경북 성주에서는 귀가하던 중학생이 급류에 휘말렸다. 경기 양주에서는 하굣길에 물살에 휘말린 누나를 구하려다가 동생마저 함께 목숨을 잃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던 전북 남원의 여덟 살 소년은 집 앞 개울을 건너다 실종된 뒤 나흘 만에 경남 함양의 하천에서 발견됐다.
얼마만 한 비가 와야 휴업이나 단축수업을 결정할 수 있을까? 강수량 100mm? 200mm?
태풍 에위니아의 피해가 컸던 경남 도내에서는 무리한 수업 강행으로 학생들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부모들의 비난이 잇따르자 교육청은 “법 규정상 휴업은 학교장 재량”이라고 하고 학교장들은 “단위 학교에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교육청 판단사항”이라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첨단기술로 ‘호우경보, 총 100∼200mm의 많은 비’라는 문자메시지가 왔어도 출근길에 나선 당신에게 지하철역이 침수됐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당신은 왜 교통이 아수라장으로 엉켰는지 알지도 못한 채 허둥거려야 한다.
법규도 마찬가지다. 법 자체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는다. 아이들을 지키는 것은 혹시라도 위험할지 모르니 학교에 오지 말라고 아이들의 새벽잠을 깨우는 전화이거나, 늘 집으로 가던 길도 오늘은 그냥 가서는 안 된다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아이들을 야단치고 위험한 곳이 없는지를 점검하는 염려와 보살핌의 눈이다.
태풍 속에서 급류에 휘말린 부산의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구한 것은 마중 나간 어머니가 내민 손이었다. 서른다섯 살 어머니는 아들을 구했지만 어린 아들은 어머니를 잃었다.
‘장마’ ‘태풍’이라는 반복되는 위험이 닥쳐도 여전히 의지할 것이라곤 혈육밖에 없는 사회가 어떻게 선진사회인가. ‘안심하고 살 만한 세상’이란 일상이 어머니의 손처럼 보이지 않는 보살핌의 손길로 자연스럽게 보호되는 세상이다.
정은령 사회부 차장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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