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 강의 기적’으로까지 불리던 독일 경제는 1995년 이래 지금까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실업은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꾸준히 늘어나기 시작해 현재 실업률은 12%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 경제 활성화 조짐이 어느 정도 나타나고는 있으나 전문기관들은 금년과 내년에도 기껏해야 1.5% 내외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혹자는 동서독 통일에서 비롯된 경제적 부담을 장기침체의 주요인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통독이 없었더라도 서독 경제의 침체는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올바른 시각이다. 다시 말해 독일 경제 침체의 주요인은 소위 독일형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즉 ‘성장과 경쟁’보다는 ‘분배와 참여’, ‘효율’보다는 ‘형평’을 더욱 중시하며 추진되어 온 지나치게 후한 각종 복지시책과 높은 조세부담, 경직된 노동시장, 노조 쪽에 치우친 노사관계 정책, 그리고 정부의 지나친 규제와 간섭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물러난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가 내놓았던 ‘어젠다 2010’이란 개혁 프로그램의 주 내용도 살펴보면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새로 등장한 우파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정부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근로자 해고 제한 규정 완화, 경영에 대한 노조 영향력 축소, 개별사업장 단위의 단체협약 허용, 그리고 소득세 및 법인세율 인하 등 이른바 ‘영미식 수술’을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다.
그럼 이제 라인 강의 기적에 필적할 만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낸 바 있는 우리 경제로 눈을 돌려 보자.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미 일류 선진국 최선두 자리에 와 있는 독일과는 달리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우리 경제의 장기침체는 무조건 막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정부는 각종 규제 및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와 협조적 노사관계 확립 등을 통한 기업 하기 좋은 여건 조성에 국정의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산별노조의 허용 등 현재 독일 정부가 개혁하려는 반대 방향의 시책을 펴는 경향을 보여 걱정스럽다. 이런 것들이 독일식 장기 침체의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축적된 이러한 체제적 요인들을 제거 내지 완화하기 위한 개혁은 무척 힘들다는 것이다. 당장 고통스러운 경쟁과 효율을 위한 개혁 프로그램은 참여와 분배 그리고 형평을 내세운 인기 영합적인 정치 슬로건을 물리치고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도 지난번 선거에서 독일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좌파 정당 등과 대연정 정부를 구성해야 했고, 그 결과 그가 원하는 진정한 개혁을 제대로 이룩해 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우리 경제가 독일형 장기 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국정의 우선순위를 기업 하기 좋은 여건 조성에 두고 기업가 정신의 창달과 투자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반기업 정서의 해소, 각종 정부 규제와 노사관계 개선, 그리고 노동시장 유연화 등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국경이 기업 입지에 큰 장애가 되지 않는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기업 하기 좋은 여건이 없는 나라에 기업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 없음을 명심하고 독일의 경험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우리 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사공 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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