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무너진 자영업자의 꿈

  • 입력 2006년 7월 16일 16시 12분


자영업 종사자들은 좀처럼 ‘장사가 안 된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남는 게 없다’는 말은 하지만 ‘안 된다’는 말은 금기로 여긴다. 세무서 직원 앞만 아니라면 중소기업이건 대기업이건 마찬가지다.

요즘은 달라졌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내놓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극심한 불황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한계상황에 이른 곳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며칠 전 동아일보에 ‘요즘 자영업자 한숨을 팝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된 뒤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불황의 심각성이 실감난다.

광화문 근처의 한 식당가에서는 이 기사를 읽은 식당 주인들이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들을 초대하겠다고 했다. 대변해 주어 고맙다는 표시이리라. 실제로 단골 식당에 가 보아도 예전 같지가 않다. 손님이 줄어드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정부기관과 기업이 몰려 있는 광화문 일대가 이럴진대 변두리와 지방의 사정은 짐작이 간다. 지지난해 ‘솥단지 시위’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식당 주인들의 얘기를 들어 보자. 지방선거와 월드컵 경기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지만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고 난데없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시위 때문에 더 어렵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동안 일본인 관광객이 도움이 됐는데 일본과의 관계 악화로 그나마도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한다.

정부는 자영업 불황을 어떻게 보는가. 민심은 경기 불황을 호소하는데 정부는 ‘인위적인 부양은 없다’고 한다. 이 말에는 ‘경제는 정상’(권오규 경제부총리 내정자)인데 ‘경영을 잘못한다’는 부실 경영론이 깔려 있다. 경제는 잘 돌아가는데 경영을 잘못해서 어렵다는 얘기다. 솥단지 시위가 벌어진 이후 정부가 자영업자 컨설팅지원대책을 내놓은 것도 부실 경영론의 연장이다.

정부의 두 번째 대응은 ‘자영업 과잉론’(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이다. “현재 40%에 육박하는 자영업자 비율이 미국처럼 5%대로 낮아질 때까지는 구조적 전환기에 따르는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어렵더라도 동업자들이 줄어들 때까지 감내하라는 것이다.

더 어려워지면 정부가 단골메뉴로 내놓는 것이 세금 감면이다. 영세 사업자에게 세금을 감면해 주겠다고 발표하지만 실제 감면 혜택을 받는 곳은 극히 드물다. 정부의 대책이 이런 식이다 보니 자영업 종사자들이 정부가 대책을 내놓아도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이젠 정부가 자영업 과잉론이나 부실 경영론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환자로 치면 응급상황이다. 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반년 새에 음식점이 1만 개 이상 줄었다. 음식점이나 여관 가운데 은행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하는 곳이 부쩍 늘었다. 이자를 제대로 내지 못하면 부실대출로 분류되는데 부실대출비율이 이 정부 출범했을 때보다 2배 이상으로 높다. 집세조차 내지 못하고 문을 닫는 곳은 그야말로 재기가 어렵다.

5·31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여당은 ‘경기를 부양하라’고 요구하지만 반짝 경기회복만으론 미흡하다. 우선 당장 무너지지 않도록 영세 자영업자에겐 저리대출을 지원하고 세금을 더 줄여 줄 필요가 있다. 정부는 세수 감소를 걱정하겠지만 미국에선 세금 감면이 세수 증가로 돌아온다는 래퍼이론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올해 들어 관광 등 서비스 분야에서 월 10억 달러 이상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매달 1조 원가량이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돈을 국내 소비로 돌린다면 자영업 불황은 상당히 해소될 수 있다. 달러를 벌어들이는 수출산업의 차원에서 자영업을 키워 보라. 예컨대 외국인들이 남녀 화장실이 따로 없는 식당을 꺼린다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시설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자영업 종사자들은 부디 꿈을 잃지 마시라. 자영업이 살아야 대기업도 나라 경제도 살 수 있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