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적으로도 이승엽은 여린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2003년 시즌 뒤 한국 잔류와 일본 진출을 두고 고민하다가 일본 롯데 입단을 발표한 뒤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선수협 사태가 터졌을 때도 고민을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순하게만 생긴 얼굴 한구석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고집이 숨어 있다는 것을 누가 알까.
결정적인 순간 이승엽은 항상 고집스러웠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했다. 그리고 결과는 항상 이승엽이 바라는 대로 됐다.
이승엽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 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구를 시작했고, 대학에 가기를 바랐던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프로에 갔다. 이승엽은 2003년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56개)을 세우며 최고 스타로 우뚝 섰다.
2003시즌 후에는 한국 잔류를 바라던 이 씨의 생각과는 달리 일본 진출을 택했다. 첫해 이승엽은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난생처음 2군에도 가보고, 벤치를 지키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이듬해 30홈런을 치더니 올해는 일본 최고 명문 구단 요미우리의 4번 타자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일본 리그 최다 홈런을 기록 중인 이승엽을 두고 벌써부터 메이저리그와 요미우리의 쟁탈전이 벌어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과연 시즌 후 이승엽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버지 이 씨는 이에 대해 “승엽이는 꿈을 먹고 사는 아이예요. 산 너머 무지개가 있잖아요. 그걸 잡으러 산을 넘어 그 자리에 가 보면 무지개는 또 저쪽에 가 있죠. 승엽이는 그렇게 살고 있어요. 끊임없이 도전하고 힘든 길을 택해서 가죠”라고 말했다.
이승엽이 2003시즌 후 삼성의 파격적인 조건을 마다하고 일본으로 간 것이나, 2005시즌 후 연봉이 깎이면서까지 요미우리로 이적한 것 역시 메이저리그행을 위한 준비 단계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바로 그 고집이 오늘의 이승엽을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메이저리거 이승엽은 그의 고집의 완결판이 될 것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오사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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