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7발 무더기 발사 이후 정부 당국자들이 습관처럼 내뱉기 시작한 말이다.
19일 오후 4시경 북한이 갑작스레 이산가족 상봉 등 모든 인도주의 관련 남북 간 논의를 중단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을 때 양창석 통일부 대변인의 공식 논평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이라는 말로 시작됐다.
19차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대표가 13일 “북남관계에 예측할 수 없는 파국적 후과(결과)가 발생하게 만든 데 대해 민족 앞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회담을 결렬시켰을 때도 정부 고위당국자는 “모든 결과는 다 예상범위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성명서 한 장에 남북관계가 좌우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남북관계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미사일 발사 다음 날인 6일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정부의 늑장 대처를 지적하는 의원들의 질의에 “저희가 다 준비해 놨고, 알고 있어서 여유를 갖고 (대처)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북한이 연쇄적으로 미사일을 7발이나 쏠 것이라는 것을 미리 몰랐다. 쏜 뒤에나 아는 것 아니냐”고 말해 정부가 미사일 연쇄 발사 가능성을 사전에 몰랐음을 시인했다.
‘다 알고 있었기에 여유 있게 대처했다’는 해명은 실소를 자아낸다. ‘다 알고 있었다’는데 어떻게 일이 나쁜 쪽으로만 진행됐을까. 한미일 공조가 무너지고, 그렇게 감쌌던 북한으로부터도 ‘이산가족 상봉 중단’이라는 뒤통수를 맞은 것이 ‘다 알고 있던 것’의 결과인지 묻고 싶다.
국민은 모든 것을 사전에 다 아는 전지전능한 정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예측 못 한 일이라면 솔직하게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정부를 갖고 싶어 할 뿐이다.
오매불망 혈육을 만날 날만 기다리던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감안했다면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중단 일방 통보에 쉽게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 대북, 대미, 대일 외교의 총체적 실패를 앞에 두고 ‘다 알고 있었다’고 강변하는 정부를 믿고 꼬박꼬박 세금을 내야 하는 국민의 처지가 안쓰럽다.
하태원 정치부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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