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표인수]반독점법 ‘한국적 관행’ 안 통한다

  • 입력 2006년 7월 21일 03시 00분


올해 2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반독점 전문가 세미나의 주된 주제는 다국적 기업들의 가격담합 조사 시 국제적인 공조 필요성과 공조 방법이었다. 실제로 얼마 후 세계적인 항공사들이 항공운임 담합 혐의로 미국 등 관련국의 조사를 받았다. 불법적 독점 행위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극명한 사례다.

가격담합을 비롯해 기업의 불법적 독점 행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처벌도 강화되고 있다. 특히 반독점법 집행에서 가장 적극적인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불법적 독점 행위를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시장질서 침해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반독점법 적용 대상을 미국 기업에 한정하지 않고 외국 기업으로 확대하여 이미 많은 외국 기업이 처벌을 받았다. 얼마 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도 가격담합 행위로 거액의 벌금을 부과받은 데 이어 관련 임원들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더구나 미국은 최근 테러방지법을 개정하면서 테러 행위 방지를 위해 실시하는 수사당국의 감청 대상에 통상이나 무역에서의 불법적 독점 행위를 포함시켰다. 기업들의 불법 행위를 감청하고 이러한 감청 활동을 통해 확보된 증거를 활용하여 관련 기업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불법적 독점 행위는 말할 것도 없고 불법 행위라고 의심받을 수 있는 어떠한 논의나 모임 등에서 나누는 얘기도 감청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활동할 때는 과거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최근 반독점법에 대한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일본, 한국 등의 경쟁당국 간 조사 공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국제적인 조사 공조나 협조는 가격담합 등의 불법 행위로 한 국가에서 처벌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에서도 조사와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해당 기업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끼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임직원들이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른 회사의 도덕성과 브랜드 가치 하락 등 무형적인 손해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한국식 문화와 관습에 젖어 경쟁 사업자들 간의 모임이나 교류가 자주 있었다. 그러나 가격이나 시장 상황 등에 대한 논의나 자료 교환이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불법 행위로 간주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우리 기업들은 앞으로 이러한 불법적 독점 행위나 이와 유사한 행위로 의심받을 수 있는 사안에는 일절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경쟁 사업자들과 가격, 시장 분할, 생산량처럼 시장에서 얻기 어려운 민감한 자료 및 정보를 교환하거나 논의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e메일이나 전화를 통한 관련 정보 및 자료 교환, 논의도 자제해야 한다.

또한 불법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수립하고 정기 또는 수시로 관련 교육을 실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최근 가격담합으로 인한 과징금을 관련 매출액의 5%에서 10%로 인상하는 등 국제적인 독점 행위 방지 노력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중국도 최근 반독점법 초안을 공표하고 그 내용과 절차 등을 손질하고 있어 곧 시행될 전망이다.

우리 기업들은 불법적 독점 행위에 대한 전 세계적인 흐름을 새롭게 인식해 적극적이고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표인수 법무법인 태평양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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