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서령]올 휴가, 강원도 어떠세요

  • 입력 2006년 7월 29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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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지긋지긋하다. 제발 멈춰 다오. 무너진 도로 한두 군데와 침수된 집 몇 채뿐일 때는 여름밤 빗소리가 아직은 정취가 있었다. 그런데 한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 흔적도 없어졌다는 소식 앞에서 자다 깨서 듣는 빗소리는 거의 공포고 분노다. 하느님이 노하셔도 분수가 있지,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내가 특히 잊지 못하는 장면은 계곡에 허옇게 뒹구는 감자알이었다. 몇천 평 감자밭이 통째로 뒤집어졌으니 감자는 손대지 않고도 저절로 캐졌고 저절로 씻겨 계곡으로 수북하게 떠내려 왔다. 얼굴이 새까맣게 탄 감자밭 주인은 저 감자가 문제가 아니라 내년 농사지을 땅이 사라져 버린 게 더 큰일 아니냐고 차라리 담담하게 말한다.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으면 저렇게 담담한 표정이 나올까. 올여름 비로 인한 피해액이 1조8000억 원이고 복구비만 3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보도를 본다. 3조 원이라고? 기가 막힌다. 이제 난 비를 좋아한다느니, 소나기가 상쾌하다느니 식의 말은 절대 함부로 지껄일 수 없을 거다.

그러나 닥친 일은 닥친 일이다. 인재니 천재니를 따지고 앉았을 수만은 없다. 비는 곧 그칠 것이고, 태연하게도 폭염이 쏟아질 것이고, 바야흐로 본격 휴가철은 시작될 것이다.

이번 휴가, 기어코 강원도로 가야 한다. 집과 땅과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사람들 앞에서 휴가를 즐기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다는 건 단견이다. 외면하는 게 양심은 아닐 거다.

강원도에 가서 계곡 속에 허옇게 뒹구는 저 감자들을 건져서 열 솥, 백 솥 우리가 삶아 먹어야 한다. 볕에 타고 수해에 탄 저 감자밭 주인의 얼굴에 허옇게 웃음이 피어오르는 걸 보는 것, 그게 최상의 휴식이고 양질의 피서고 적극적인 재충전이다.

강원도가 지금 ‘3·1·2 운동’을 펼치고 있다. 사흘 휴가 중 하루만 자원봉사를 해 주고 이틀은 부담 없이 즐기고 가라는 호소인데 경제적인 타격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서는 피서객이 강원도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자구책 같다. 자원봉사라는 말도 이번에는 적절치 않다. 그냥 부조라고 해 두자. 궂은일을 당한 집에 묵도 한 솥 쒀 가고 술도 한 말 담가 가던 옛 씨족사회의 풍습을 21세기에 한번 재현해 볼 기회다.

새삼 자원봉사의 성취감과 보람과 기쁨을 말하자는 건 아니다. 동시대에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그것만으로 이미 깊은 인연으로 얽혀 있다. 네가 불행한데 나만 행복할 수는 도저히 없다. 천재지변이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지금 힘겨운 너에게로 가는 것은 내가 고난을 당할 때 너를 내 곁에 부를 수 있다는 약속이고 보험이다.

급변하는 미래사회는 가치관의 다양화, 집단이기주의 만연, 의사표출 방법의 다양화, 정체성 상실 등으로 사회공동체가 분열되고 애국심 따위도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트렌드가 있으면 언제나 역트렌드도 있다. 그 때문에 미래사회는 더더욱 인간 사이의 따스함과 소통과 이해를 갈망하게 될 것이다.

미래사회의 경쟁력과 리더십의 관건은 설득력과 휴머니티와 봉사정신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침 방학이고 휴가철이니 자녀 동반해서 강원도로 가자. 흙 속에 묻힌 살림살이를 함께 꺼내서 씻고 펴고 닦고 말리자. 그러는 중에 가족과 삶과 자연의 가치와 의미를 절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학기 중에 아이에게 말과 셈을 가르치는 데 급급했다면 방학엔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 방법이 푸르고 아름다웠던 강원도, 지금 다쳐서 피 흘리는 평창과 인제의 골골에 숨어 있다. 비를 뿌린 하느님이 기대한 것도 아마 이것이 아니었을까.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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