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특히 잊지 못하는 장면은 계곡에 허옇게 뒹구는 감자알이었다. 몇천 평 감자밭이 통째로 뒤집어졌으니 감자는 손대지 않고도 저절로 캐졌고 저절로 씻겨 계곡으로 수북하게 떠내려 왔다. 얼굴이 새까맣게 탄 감자밭 주인은 저 감자가 문제가 아니라 내년 농사지을 땅이 사라져 버린 게 더 큰일 아니냐고 차라리 담담하게 말한다.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으면 저렇게 담담한 표정이 나올까. 올여름 비로 인한 피해액이 1조8000억 원이고 복구비만 3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보도를 본다. 3조 원이라고? 기가 막힌다. 이제 난 비를 좋아한다느니, 소나기가 상쾌하다느니 식의 말은 절대 함부로 지껄일 수 없을 거다.
그러나 닥친 일은 닥친 일이다. 인재니 천재니를 따지고 앉았을 수만은 없다. 비는 곧 그칠 것이고, 태연하게도 폭염이 쏟아질 것이고, 바야흐로 본격 휴가철은 시작될 것이다.
이번 휴가, 기어코 강원도로 가야 한다. 집과 땅과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사람들 앞에서 휴가를 즐기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다는 건 단견이다. 외면하는 게 양심은 아닐 거다.
강원도에 가서 계곡 속에 허옇게 뒹구는 저 감자들을 건져서 열 솥, 백 솥 우리가 삶아 먹어야 한다. 볕에 타고 수해에 탄 저 감자밭 주인의 얼굴에 허옇게 웃음이 피어오르는 걸 보는 것, 그게 최상의 휴식이고 양질의 피서고 적극적인 재충전이다.
강원도가 지금 ‘3·1·2 운동’을 펼치고 있다. 사흘 휴가 중 하루만 자원봉사를 해 주고 이틀은 부담 없이 즐기고 가라는 호소인데 경제적인 타격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서는 피서객이 강원도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자구책 같다. 자원봉사라는 말도 이번에는 적절치 않다. 그냥 부조라고 해 두자. 궂은일을 당한 집에 묵도 한 솥 쒀 가고 술도 한 말 담가 가던 옛 씨족사회의 풍습을 21세기에 한번 재현해 볼 기회다.
새삼 자원봉사의 성취감과 보람과 기쁨을 말하자는 건 아니다. 동시대에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그것만으로 이미 깊은 인연으로 얽혀 있다. 네가 불행한데 나만 행복할 수는 도저히 없다. 천재지변이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지금 힘겨운 너에게로 가는 것은 내가 고난을 당할 때 너를 내 곁에 부를 수 있다는 약속이고 보험이다.
급변하는 미래사회는 가치관의 다양화, 집단이기주의 만연, 의사표출 방법의 다양화, 정체성 상실 등으로 사회공동체가 분열되고 애국심 따위도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트렌드가 있으면 언제나 역트렌드도 있다. 그 때문에 미래사회는 더더욱 인간 사이의 따스함과 소통과 이해를 갈망하게 될 것이다.
미래사회의 경쟁력과 리더십의 관건은 설득력과 휴머니티와 봉사정신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침 방학이고 휴가철이니 자녀 동반해서 강원도로 가자. 흙 속에 묻힌 살림살이를 함께 꺼내서 씻고 펴고 닦고 말리자. 그러는 중에 가족과 삶과 자연의 가치와 의미를 절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학기 중에 아이에게 말과 셈을 가르치는 데 급급했다면 방학엔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 방법이 푸르고 아름다웠던 강원도, 지금 다쳐서 피 흘리는 평창과 인제의 골골에 숨어 있다. 비를 뿌린 하느님이 기대한 것도 아마 이것이 아니었을까.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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