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코드맨’의 ‘코드맨’ 감싸기

  • 입력 2006년 8월 4일 03시 02분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논문 표절 의혹으로 2일 사의를 표명한 김병준 교육부총리와 인연이 많다.

김 부총리가 대통령정책실장이던 당시 권 부총리는 잠시 경제정책수석비서관을 맡다가 바로 정책실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김 부총리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권 부총리가 정책수석비서관으로 일한 적도 있다. 두 사람 모두 현 정부 출범 후 눈에 띄게 ‘출세’했다는 평도 듣는다.

그런 관계 때문이었을까. 권 부총리는 3일 기자들이 ‘김병준 파문’에 대한 소감을 묻자 착잡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내 김 부총리를 감쌌다.

그는 “언론에 다른 이유로 알려져 이렇게 됐지만 사실 그 양반(김 부총리)이 실제 여러 면에서 (국정에) 기여한 게 많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실제로는 김 부총리의 정책 노선이 시장 원리에 입각해 있었다”며 “많은 혼선을 정리했는데 특히 정책실장 때는 대통령직속 위원회를 완전히 정책실 소속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 이후 위원회에서 정책 방향에 대해 정부와 다른 내용이 나온 게 있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감안한다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함께 일한 사람들이 상황이 바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안면 바꿔 매몰차게 돌아서거나, 심지어 ‘친정 사람들’을 비난하는 모습도 보기 좋지는 않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권 부총리의 ‘김병준 평가’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그는 김 부총리가 시장 원리에 입각한 정책 노선의 소유자라고 했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김 부총리가 쏟아낸 “헌법만큼 바꾸기 힘든 정책을 만들겠다” “세금 폭탄은 아직 멀었다” 등의 ‘반(反)시장적’ 발언을 기억한다.

김 부총리가 위원회를 장악해 정부 내 혼선이 사라졌다는 주장도 ‘위원회 공화국’으로까지 불리는 우리 사회의 ‘위원회 피로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권오규 경제팀’이 해야 할 핵심 과제는 이른바 ‘코드’에 따른 ‘시장(市場)과의 불화’를 풀어 가는 일이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경제가 살아나기 어렵다고 많은 전문가는 지적한다. 혹시라도 권 부총리의 이번 발언이 ‘코드맨의 코드맨 감싸기’라는 말을 듣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이승헌 경제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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