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에게 마시멜로는 유년 시절의 즐거운 한때를 떠올리게 하는 과자인 것 같다. 솜사탕을 단단히 뭉쳐 토막 낸 듯한 마시멜로를 처음 봤을 때 ‘달기만 하지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나’ 싶었다. 가만 보니 미국인들은 긴 꼬챙이에 마시멜로를 꿰어 모닥불 같은 데 구워 먹었다. 뜨거워진 마시멜로를 초콜릿과 함께 비스킷 사이에 넣어 먹는 스모어 샌드위치는 아이들을 위한 파티나 피크닉에서 최고 인기 간식이다. 그들에게는 마시멜로가 추억으로 먹는 음식인 셈이다.
책이 안 팔려 고민인 요즘 서점가에서는 마시멜로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자기계발서가 100만 부 넘게 팔린 것이 화제다. 밀리언셀러의 내용은 단순한 우화다. 네 살배기 꼬마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그 중심에 있다. 눈앞의 마시멜로를 안 먹고 15분만 버티면 한 개를 더 준다고 말한 뒤 반응을 보는 실험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마시멜로를 먹어 치운 아이들과 먹고 싶은 욕구를 참고 2개를 받아 낸 아이들을 훗날 비교해 보니 순간의 달콤한 유혹을 참고 기다린 아이들이 더 성공적으로 성장했다는 것. ‘욕망’과 ‘자제심’에 관한 이 실험이 제시하는 성공의 비결은 ‘눈부신 유혹을 이기면 눈부신 성공을 맞이하리라’는 것이다. 긴 안목 아래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참고, 하기 싫은 일도 견디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 준다.
한국 사회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기만족을 잠시 미뤄야 한다는 ‘초간단 교훈’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어서 이 책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매일같이 인사권이니 전시작전통제권이니 이슈에 대해 속마음을 쏟아내는 이들을 보면 그렇다. 내 뜻대로 코드인사 하고, 내 맘대로 말하고, 힘을 휘두르고 싶은 욕구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신망을 얻겠다는 더 큰 꿈, 평등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더 큰 만족의 가능성을 위해서 나아가는 길일 터이다.
대안적 진보를 내세운 지식인 단체의 최근 심포지엄에선 “깊은 성찰과 획기적 전환이 없으면 진보개혁 세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엄중한 경고도 나왔다고 한다. 한때 참여정부에 우호적이던 사람들마저 이렇게 발언한 것은 정권에 참여한, 이른바 민주화운동 세력에 붙어 있는 상표가 과대 포장됐음을 뒤늦게 깨치고 실망했기 때문이리라.
이 사회에서 진보는 늘 마이너리티의 처지였다.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스스로도 놀라워하면서 집권에 이른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진보를 자처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한번 귀 기울여 보겠다고 우호적인 마음을 먹은 점도 무시할 순 없다.
주류를 적대시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아직도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의식화하면서 처음 맛보는 달콤한 마시멜로를 마구 먹어 치우는 데 여념이 없다면 이는 모두에게 큰 불행이 될 것이다.
그나저나 남 걱정 할 일도 아니다. 지금 내 눈앞에 놓인 마시멜로는 어떤 것일까. 그 강렬한 매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우선 그게 무엇인지부터 찾아내는 게 급선무겠다.
고미석 문화부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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