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이 여러 수를 들여 빙 둘러쳤는데도 백이 ○로 움직여 나오자 윤 8단의 짙은 눈썹이 씰룩거린다.
그렇다면 뭔가 단호히 응징을 해야 하는데 이게 또 막상 잡기가 쉽지 않은 모습이다. 승부에 흥분은 금물. 용서할 수 없다는 듯 흑 77로 차단하고 나섰는데, 무리수였다. 냉정을 찾아 참고도 흑 1로 중앙을 보강하는 편이 나았다. 백 2, 4를 선수로 당하는 것이 내키지 않겠지만 이렇게 두었으면 여전히 팽팽했다.
백 78, 80으로 기어 나와 82로 단수하자 흑은 짧은 신음을 토하더니 잇지를 못하고 83으로 손길을 돌린다.
한창 위쪽에서 전투를 벌이다 말고 돌연 아래쪽으로 내려가 한가하게 담배 한 대 피우는 형상인데, 어떤 속사정이 있었을까. 흑이 84에 이으면 어떤 수가 있기에….
해설=김승준 9단
글=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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