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즐겁다. 구수한 언변에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날카로운 유머를 가지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에덴의 용을 통해 우리는 바로 그런 희귀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에덴의 용’은 무려 30년 전에 쓰인 뇌과학 책이다. 따라서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이나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같은 첨단장비로 인간의 마음을 연구한 최신 정보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현대 뇌과학자 입장에서 볼 때 조금 미진한 부분도 보인다. 예컨대 칼 세이건은 뇌줄기는 본능적인 삶을, 변연계는 감정을, 전두엽을 비롯한 신피질은 지성을 담당한다는 폴 매클린의 삼위일체설을 그대로 견지한다. 물론 대부분은 여전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전두엽도 실은 감성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지성과 감성은 서로 뗄 수 없는 연결고리로 엮어져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깊이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또한 소뇌는 절대 인지기능에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쓰고 있으나 최근 연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관통하는 뇌과학 정보는 매우 풍부하며 그 대부분은 진실이다. 이 책이 놀라운 것은 일반적인 뇌과학 서적과는 달리 천문학, 고고학, 진화생물학 등 여러 학문들이 어우러져 있다는 사실이다. 감탄스러운 박식함 속에서 이런 생경한 학문들은 잘 비벼진 비빔밥처럼 용해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각도로 ‘뇌의 동물’인 인간을 이해하게끔 만든다.
예컨대 그는 150억 년이라는 우주 역사를 1년으로 간주하고 현세를 조명한다. 그러면 지구는 9월 14일에 태어났고 최초의 인간은 맨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후 10시 30분에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유럽의 르네상스는 오후 11시 59분 59초에 시작한다. 하루하루 일희일비하며 살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유구한 우주의 역사 속에 선 자신의 모습을 겸손하게 깨닫게 하는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반면 천문학적 규모의 신경세포 연결로 인해 무한한 창조를 가능케 하는 우리의 뇌에 대한 설명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기도 한다.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그는 인간을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뇌를 진화시킨 동물로 이해했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세상에서 동물의 취약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잠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진화한 것일까? 세이건은 중생대에 연약한 포유류들에게는 공룡들이 활동하던 낮에 잠을 자면서 숨어 있는 것이 오히려 생존에 유리했기에 잠이 진화한 것으로 설명한다. 잠 역시 뇌의 활동이므로, 잠을 가능케 하는 뇌의 회로는 이런 식으로 발달했다는 것이다. 곳곳에 숨어있는 상상력과 유머는 이 책의 또 하나의 매력이다.
공룡들이 몸이 차가워 움직이기 힘든 밤에 포유류들이 알을 훔쳐 먹어 공룡의 멸종이 가속화됐을 것이며, 서구식 아침 식사에서 달걀 두 개가 나오는 것은 고대 포유류 조상들의 식생활의 유물일 수도 있다는 코멘트가 바로 그런 예이다.
그는 몰랐겠지만, 최근의 MRI 연구는 지적인 사고, 그리고 유머를 구사하는 동안 지성의 뇌인 전두엽이 활성화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바로 전두엽의 인간이었고 인류의 지성을 끝까지 믿은 사람이다. 1996년 백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다. 죽기 전까지 짓궂은 유머를 계속하다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 말한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 한 세대를 풍미한 지성을 더는 볼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의 향기가 가득 느껴지는 ‘에덴의 용’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행운이다. 원제 ‘The Dragons of Eden: Speculations on The Evolution of Human Intelligence’(1977년).
김종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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